Article Review

[정치학/설문] Matsunga & van Spanje (2025) 유럽 우파 정당, 왜 낙인(stigma)을 받을까?

Dr. Julia 2025. 5. 26. 00:19

🇪🇺 유럽 우파 정당, 왜 낙인(stigma)을 받을까?

2024년 유럽의회 선거 데이터를 통해 본 유권자 인식과 투표 행동

우파 정당, 특히 극우 정당은 종종 ‘극단주의’나 ‘인종차별’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하지만 과연 유럽 유권자들은 이런 정당들을 얼마나 부정적으로 인식할까요? 또 그런 인식이 실제 투표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이번 블로그에서는 유럽 27개국의 유권자 25,000여 명 데이터를 분석한 Matsunaga와 van Spanje의 2025년 연구를 쉽게 풀어보려 합니다. 이 논문은 단순히 ‘극우 정당은 나쁘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 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우파 정당을 낙인찍는지를 아주 정교하게 살펴봤습니다.

 

🔍 배경: 우파 정당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우파 정당, 특히 극우 정당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normal)과 비정상(abnormal)’의 경계를 둘러싼 싸움일 수 있습니다. 사회는 어떤 정치세력에게는 “정당한 경쟁자”라는 인정을 부여하지만, 어떤 정당에게는 “그들은 선을 넘었다”는 식의 **도덕적 낙인(stigma)**을 붙이곤 합니다. 이 논문에서 다루는 "낙인"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 1963)은 낙인을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손상된 정체성”으로 정의했습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속성이나 신념이 사회가 받아들이는 ‘정상’ 범위를 벗어나면, 그 집단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립됩니다. 예를 들어, 나치와 파시즘의 역사적 유산을 지닌 정당이 유럽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얻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에는 좌파 정당, 특히 공산주의 계열이 낙인의 대상이었지만, 최근 수십 년간은 극우 정당들이 **‘인종차별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이유로 낙인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인식은 언론, 정치 경쟁자, 시민사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증폭됩니다. 유권자들도 사회적 분위기를 읽으며 이러한 정당을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낙인이 항상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가에 따라, 혹은 개인의 경험과 가치에 따라, 어떤 사람은 극우 정당을 ‘극단적’이라고 느끼지만, 또 다른 사람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낙인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대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낙인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은 경쟁 정당을 '극단적'이라고 프레이밍해 지지율을 떨어뜨리려 하고, 반대로 낙인을 받는 정당은 자신들이 ‘기성 정치로부터 소외된 진짜 민심의 대변자’라고 주장하며 피해자 서사를 활용합니다. 즉, 낙인은 단순한 도덕적 평가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이기도 한 셈입니다.

이 논문이 주목하는 핵심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 어떤 조건에서 낙인이 작동하고, 언제 그 힘이 약화되는가?
▶️ 유권자들은 왜 낙인이 찍힌 정당에 투표하기도 하는가?
▶️ 낙인을 만드는 구조와, 그것이 실제 정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극우 정당을 ‘비난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서, 현대 유럽 정치의 균열과 변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분석 틀을 제공합니다. 낙인을 둘러싼 정치적 지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럽 각국에서 활발히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 연구 방법: 유럽 전역의 우파 정당과 유권자 인식 조사

이 논문은 단순히 한두 나라의 극우 정당만 분석하는 기존 연구들과 다릅니다. 연구진은 유럽연합(EU)에 속한 27개국 전체를 대상으로,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진행된 대규모 설문조사 데이터(European Election Studies, EES 2024)**를 활용했습니다.
분석 대상 유권자 수만 무려 25,904명에 달하고, 정당은 총 81개 우파 정당을 포함합니다.

이 81개 정당은 아래처럼 구분됩니다:

  • 27개 주류 우파 정당: 보통 중도우파 성향의 보수당, 기독민주당, 자유당 등
  • 각국의 극우 정당들(최대 4개까지 포함): 반이민, 반EU, 극단적 민족주의 경향을 보이는 정당들

🧾 유권자들에게 물은 핵심 질문

연구진은 유권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각 질문은 **1점(전혀 그렇지 않다)부터 7점(매우 그렇다)**까지 선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1. “이 정당은 **극단주의적(extremist)**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이 정당은 **인종차별적(racist)**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흥미로운 점은, 유권자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활동 중인 여러 우파 정당들을 각각 따로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독일 유권자는 기민당(CDU)과 극우 성향의 AfD를, 프랑스 유권자는 공화당과 국민연합(National Rally)을 각각 따로 평가한 것이죠.

🧠 분석 단위는 ‘정당에 대한 개인의 낙인 인식’

이 데이터는 정당별 낙인 점수를 집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유권자가 특정 정당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분석 단위로 삼습니다. 즉, 한 사람당 여러 정당에 대한 인식을 평가했기 때문에, 전체 데이터는 **6만 건이 넘는 ‘유권자-정당 쌍(dyad)’**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이 낙인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 요인들도 함께 수집했습니다:

  • 성별
  • 나이
  • 교육 수준
  • 거주 지역(도시 vs 농촌)
  • 이념 성향(좌-우 스펙트럼 상 위치)
  • 사회적 계급 인식
  • 정치에 대한 관심도
  • 자국 출생 여부

뿐만 아니라, 낙인이 국가마다 다르게 형성되는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국가 수준의 맥락적 변수도 모델에 포함시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 📌 공산주의 과거(공산권 국가였는가?)
  • 📌 파시스트 과거(나치 혹은 극우 정권과의 역사적 연관성)
  • 📌 해당 정당의 정부 참여 경험(연립정부에 참여한 적 있는가?)
  • 📌 국가 전체의 정치 양극화 수준

이러한 다양한 변수들을 통합하기 위해, 연구진은 **다층모형(multilevel model)**을 사용했습니다. 이 방식은 개별 유권자의 특성과, 그 유권자가 속한 국가의 특성을 동시에 고려하여 분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나라에 사느냐에 따라 낙인 인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분석입니다.

🔍 정당 포지션도 통제했다

정당의 실제 정책이 어떤지도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에, 연구진은 **선거 공약 데이터(MARPOR)**를 활용해 정당들의 정책 입장도 통제했습니다. 예컨대,

  • 이민 정책에 대한 태도 (찬성/반대)
  • 다문화주의 수용 정도
  • 자유시장 경제 지지 여부

이렇게 정당의 정책적 ‘실체’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낙인이 단순히 선입견이 아니라 정책과 연결된 사회적 인식이라는 점도 검증하려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 논문은 유럽 전역의 유권자들이 각자의 정치적 배경, 역사적 경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어떤 우파 정당을 낙인찍는지, 그리고 그런 인식이 투표 의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매우 정교하게 추적한 연구입니다.

이 정도로 꼼꼼한 설계는 기존 연구들에서는 드물고, 유럽 정당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뿐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 주요 결과 ①: 어떤 나라에서 우파 낙인이 약한가?

연구 결과, 우파 정당에 대한 낙인 인식은 유럽 전체에서 국가별로 매우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같은 극우 정당이라도, 어떤 나라에서는 "극단적이고 인종차별적이다"는 평가를 받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요인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 공산주의 과거가 있는 나라들: 낙인 수준이 낮음

동유럽의 **구공산권 국가들(예: 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에서는 극우 정당에 대한 인종차별적 낙인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 과거 공산 정권 아래에서 좌파가 권력을 독점했던 역사 때문에, 오늘날 유권자들은 좌파보다는 우파에 더 관대한 경향을 보였습니다.
  • 특히, 민족주의적 주장이나 반이민 메시지가 사회 전체에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도 낙인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 실제 분석에서, 공산주의 과거를 가진 나라에서는 극우 정당의 ‘인종차별 낙인’ 점수가 평균보다 0.44점 이상 낮게 나타났습니다 (7점 척도 기준). 통계적으로도 매우 유의미한 결과였습니다.

2️⃣ 정부 참여 경험이 있는 정당: 낙인 수준이 낮음

또 하나 흥미로운 발견은, 정부에 들어간 경험이 있는 극우 정당은 낙인이 낮다는 점입니다.

  •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처럼 실제로 연립정부에 참여했던 극우 정당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이 덜했습니다.
  •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나라를 운영해본 정당이잖아”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극단성’이나 ‘비정상성’이라는 이미지가 희석되는 것입니다.

📉 정부 참여 경험이 있는 극우 정당은, 그렇지 않은 정당보다 낙인 점수가 약 0.9점 이상 낮게 나타났습니다.

반면, ‘파시즘 과거’는 생각보다 약한 영향력

기존에는 나치나 파시스트 역사와 가까운 나라들(예: 독일, 이탈리아)일수록 극우 정당에 대한 낙인이 클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그 효과가 생각보다 미약하거나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역사적 기억이 희미해졌거나, 사회적 규범이 재조정되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 극우 vs 주류 우파: 낙인의 차이

  • 극우 정당은 평균적으로 극단성과 인종차별 낙인 점수가 4.5 이상 (7점 척도)으로 높았고,
  • 주류 우파 정당은 3점대 수준으로, 비교적 ‘정상’으로 인식됐습니다.

즉, 같은 우파라도 유럽 시민들은 정당의 이미지와 이념 성향에 따라 상당히 다른 낙인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 주요 결과 ②: 낙인은 투표 행동에 어떤 영향을 줄까?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어떤 정당을 ‘극단적’ 혹은 ‘인종차별적’이라고 인식할 때, 실제로 그 정당에 투표하지 않게 되는가? 이 논문은 이 질문에 매우 정교하게 답합니다.

📉 전반적 경향: 낙인이 강할수록, 투표 의향(PTV)은 낮아진다

  • 극우 정당의 경우, 유권자가 해당 정당을 '인종차별적'이라고 평가할수록 투표 의향은 뚜렷하게 감소했습니다.
    예: 낙인 점수가 1점 오를 때마다, 해당 정당에 대한 투표 의향은 약 0.5점 감소 (10점 척도 기준)
  • 주류 우파 정당도 마찬가지로 낙인의 영향은 존재했지만, 그 강도는 극우 정당보다 약했습니다.

⚠️ 그러나 모든 유권자에게 낙인이 ‘벌칙’이 되진 않는다

이 논문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낙인의 영향이 개인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세 가지 요인이 중요한 조절변수로 작용했습니다:


1️⃣ 정치 신뢰도: 신뢰가 높을수록 낙인을 강하게 느낀다

  • 정치 제도에 대한 신뢰가 높은 유권자들은 극우 정당이 사회 규범을 어긴다고 느끼고, 더 강한 낙인 인식을 가졌습니다.
  • 반대로 정치에 대한 신뢰가 낮은 유권자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낙인을 무시하고도 극우 정당에 투표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2️⃣ 이민에 대한 태도: 반이민 성향이면 낙인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 반이민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은, 그 정당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내가 원하는 정책을 말하잖아”**라는 식으로 낙인을 넘어서 투표합니다.
  • 특히 극우 정당이 선명하게 반이민 메시지를 낼수록, 이런 유권자들에게는 오히려 호감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3️⃣ 경제 인식: 경제 불만이 크면 낙인을 감수하고라도 투표한다

  •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큰 유권자들은, “지금은 도덕이 중요한 때가 아니다. 먹고사는 게 먼저다”라는 태도로 낙인이 강한 정당에 투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반대로 경제가 괜찮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은 극우 정당을 더 강하게 비판하고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 이처럼 ‘낙인 → 투표 기피’라는 단순한 공식을 넘어서, 낙인의 효과는 유권자 개인의 정치 신뢰도, 정책 우선순위, 사회경제적 불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요약하자면,

  • 낙인은 여전히 유효한 정치적 제어장치이긴 하지만,
  • 불신, 불만, 위기의 시대에는 낙인의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이 논문은 잘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