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은 어떻게 ‘들리는가’?
미국 대통령 연설 속 포퓰리즘 언어의 전략과 감정
Yu Wang 외, 2025, arXiv:2505.07874v1
🧭 들어가며: 포퓰리즘, ‘말투’로 구분할 수 있을까?
포퓰리즘이란 단어는 이제 뉴스와 정치 토론에서 너무도 흔하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포퓰리즘을 알아보는 방식은 단지 ‘무슨 말을 하는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들의 말투, 감정의 강도, 문장의 구조, 어휘 선택 등에서 강한 인상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의 “Washington flourished – but the people did not.” 같은 문장은 단순히 엘리트 비판을 넘어서, 마치 연극적인 리듬과 강렬한 어조로 대중을 자극합니다. 이와 달리 버니 샌더스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경제 불평등과 사회 정의를 강조하죠. 똑같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고 있지만, 그 언어의 스타일과 분위기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포퓰리즘은 ‘말투’로도 구분할 수 있을까?
기존 포퓰리즘 연구는 대부분 ‘무엇을 말했는가’에 집중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단어가 ‘엘리트’나 ‘국민’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어떤 정책을 지지하는지 등 **내용 중심의 분석(content analysis)**이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새롭게 질문합니다.
‘포퓰리즘은 특정한 “소리(sound)”를 갖고 있는가?’
‘그 말의 어조와 감정, 문체는 어떤 특징을 갖는가?’
이 연구는 미국 대통령의 공식 연설—특히 취임사와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을 바탕으로, 포퓰리즘 언어의 말투와 스타일을 정량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서, 텍스트가 **어떻게 들리는가(how it sounds)**에 초점을 맞춘 것이죠.
이를 위해 연구진은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합니다.
- LIWC (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 단어들을 감정, 인지, 문체적 카테고리로 분류해 정량화합니다.
- RoBERTa 모델: 포퓰리즘 네 가지 하위 유형(좌파, 우파, 반엘리트, 친대중)을 학습한 인공지능 모델로, 연설문을 포퓰리즘 점수화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논문은 포퓰리즘을 ‘내용’의 문제가 아닌 ‘형식’의 문제로 바꿔서 보는 혁신적인 시도입니다. 정치인이 어떤 주장을 하든, 그것을 어떻게 말하는가가 대중과의 관계를 만든다는 전제를 실증적으로 검증합니다.
📚 이론적 배경: 포퓰리즘의 네 얼굴
포퓰리즘은 학계에서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는 개념이지만, 그 정의와 분류 방식은 연구자마다 다양합니다. 이 논문은 기존 논의들을 토대로, 포퓰리즘을 이념적 성향과 담론적 전략 두 가지 틀로 이해합니다.
먼저, **Cas Mudde (2004)**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하나의 완결된 이념이 아니라, 그 자체로는 얇은(thin-centered) 이념입니다. 즉, 포퓰리즘은 좌파이든 우파이든 어떤 ‘두꺼운 이념(thick ideology)’과 결합해 작동하며, 그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순수한 국민(the pure people)” vs. “부패한 엘리트(the corrupt elite)”
→ 정치는 반드시 국민의 일반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
이와 함께 **Laclau (2005)**는 포퓰리즘을 고정된 이념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정체성과 대립구조를 만드는 수사적 전략(discursive strategy)**으로 봅니다. 예컨대, 정치인은 ‘국민’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그들과 반대되는 집단(엘리트, 외국인, 도시 중산층 등)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담론은 단순히 주장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정치적 관계와 권력구조를 새롭게 구성합니다.
이 논문은 이론적으로 포퓰리즘을 네 가지 하위 유형으로 나눕니다. 이 구분은 **Erhard et al. (2025)**의 연구를 토대로 하며, 각각의 하위 유형은 포퓰리즘의 어떤 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 좌파 포퓰리즘 (Left-Wing Populism)
- 주로 경제 불평등, 사회 정의, 복지국가를 강조
- 적대 대상은 대기업, 초국적 기관, 신자유주의 정치인
- 예: 버니 샌더스, 우고 차베스
- 우파 포퓰리즘 (Right-Wing Populism)
- 민족주의, 반이민, 전통적 가치를 중시
- 적대 대상은 이민자, 글로벌 엘리트, 진보적 지식인층
- 예: 도널드 트럼프, 마린 르펜
- 반엘리트 담론 (Anti-Elitism)
- 정치·경제 엘리트를 부패한 세력으로 규정
- “워싱턴의 늪을 말려버리겠다”는 식의 정치 혐오 감정 조장
- 트럼프의 “Drain the Swamp” 구호가 대표적 사례
- 친대중 담론 (People-Centrism)
- ‘국민은 항상 선하고 순수하다’는 도덕적 우위 강조
- 대중의 “상식(common sense)”을 정당화의 기반으로 사용
- 브렉시트 캠페인의 “Take Back Control” 슬로건이 예시
이 네 가지 분류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많은 포퓰리스트는 두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 분류는 포퓰리즘이 이념적으로나 스타일적으로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용한 틀입니다.
🛠️ 연구 방법: 말투를 수치로 바꾸기
포퓰리즘의 ‘말투’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이 연구는 포퓰리즘 담론의 ‘말투’를 객관적인 숫자 데이터로 변환해 분석했습니다. 즉, 말의 ‘톤(tone)’과 ‘형식(style)’이라는 직관적인 개념을 정량화하여 실증 분석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두 가지 주요 분석 도구를 결합했습니다:
🔹1. LIWC (Linguistic Inquiry and Word Count):
심리언어학 기반 단어 분류 도구
LIWC는 심리학자 Pennebaker 등이 개발한 텍스트 분석 프로그램입니다. 텍스트에 등장하는 단어들을 미리 정의된 심리적, 문체적, 사회적 범주에 따라 분류해 숫자 값으로 변환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지표를 계산합니다:
- 감정 표현:
- 긍정 감정 (posemo): love, nice, sweet
- 부정 감정 (negemo): hate, war, enemy
- 분노 (anger), 불안 (anx), 슬픔 (sad) 등
- 문법·문체 특성:
- 비격식 언어 (informal): cool, yeah, ok
- 욕설 (swear): damn, hell
- 비유창성 (nonflu): er, uh, hmm
- 인터넷 용어 (netspeak): lol, btw
- 조동사 (auxverb), 전치사 (prep), 부사 (adverb) 등 → 문장 구조 복잡도 추정
- 사회적 언어:
- 사회적 관계 (social): talk, friend, share
- 경제 (money): dollar, cost, budget
- 인식·인지 (cogproc, insight, cause, tentat) 등
이 연구에서는 308개의 미국 대통령 연설문(1789~2025년의 취임사 및 국정연설)에 대해 LIWC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총 94개 항목에 대해 문장 단위로 점수를 계산했으며, 이는 모두 독립 변수로 사용됩니다.
🔹2. RoBERTa 모델 (Fine-tuned Language Model):
포퓰리즘 점수를 자동으로 예측하는 AI 모델
LIWC가 텍스트의 감정이나 문체적 요소를 잘 포착하는 도구라면, RoBERTa는 말의 맥락(Context)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딥러닝 기반 언어 모델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RoBERTa를 사용하여, 각 문장에 포퓰리즘 유형별 점수를 부여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 RoBERTa란?
RoBERTa는 Facebook AI가 개발한 BERT 계열의 향상된 모델로, 텍스트 분류와 감성 분석 등에서 최고의 성능을 보이고 있는 모델입니다. 기존 BERT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더 오랜 시간 학습하여, 문맥 파악 능력이 뛰어납니다.
이 연구에서는 RoBERTa를 일반 용도로 쓰지 않고, 포퓰리즘 예측용으로 특별히 fine-tuning 했습니다. 즉, **포퓰리즘 4대 하위 유형(좌파, 우파, 반엘리트, 친대중)**을 자동으로 예측할 수 있도록 재학습시킨 것입니다.
🔄 어떻게 학습시켰을까?
- 훈련 데이터는 **Erhard et al. (2025)**의 독일 연방의회 연설 데이터셋입니다.
이 데이터셋은 각 문장이 사람이 직접 코딩한 4가지 포퓰리즘 차원에 대한 라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 한 문장에 대해 anti-elitism=1, people-centrism=1, left=0, right=1 식의 정보 - 모델 fine-tuning 방식
- RoBERTa-large 모델 사용 (파라미터 약 355M개)
- 4개의 연속형 점수를 동시에 예측하는 multi-label regression 구조
- 학습률(learning rate)은 1.5e-5, 1.75e-5, 2e-5 등 세 가지 값으로 실험
- 결과는 무작위 시드로 3회 반복하여 평균값을 사용 (신뢰도 확보)
- 특이점: 독일어 원문이 아닌 영문 번역본을 사용
번역은 OpenAI의 GPT-4o API로 수행되었으며, Google Translate 결과와 비교해 더 정확한 번역 성능을 보였음
📈 성능 결과
Anti-elitism | 0.84 | 0.85 |
People-centrism | 0.71 | 0.71 |
Left-wing | 0.73 | 0.72 |
Right-wing | 0.67 | 0.70 |
Micro average | 0.77 | 0.78 |
Macro average | 0.74 | 0.75 |
즉, 이 모델은 문장 하나만 넣어도 해당 발화가 얼마나 포퓰리즘적인지, 어떤 유형의 포퓰리즘인지 점수화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이렇게 얻은 점수는 다음 분석 단계에서 종속변수로 사용됩니다.
🔹3. 분석 설계: LIWC → Populism Score 예측
말투가 포퓰리즘 점수를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앞서 RoBERTa 모델로부터 얻은 포퓰리즘 점수는 4개의 연속형 지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연설문(또는 문단)은 다음과 같은 점수를 갖습니다:
- 좌파 포퓰리즘 점수 (Left-wing)
- 우파 포퓰리즘 점수 (Right-wing)
- 반엘리트 점수 (Anti-elitism)
- 친대중 점수 (People-centrism)
이제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LIWC가 측정한 말투의 특성(문체·감정·형식)이, 포퓰리즘의 유형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는가?”
즉, LIWC의 언어 지표들을 독립 변수로, RoBERTa의 포퓰리즘 점수를 종속 변수로 삼아 **회귀분석(multiple linear regression)**을 수행한 것입니다.
🧪 회귀 모델 공식
Y=β0+β1X1+β2X2+⋯+βpXp+γ⋅Year+ϵ
- Y: RoBERTa가 예측한 포퓰리즘 점수 (좌파, 우파, 반엘리트, 친대중 중 하나)
- X₁ ~ Xₚ: LIWC의 94개 언어 지표 (e.g., swear, anger, auxverb, social)
- Year: 연설 연도 (시간 변화 통제)
- ε: 오차항
각 포퓰리즘 유형마다 별도의 회귀식을 만들었으며, 그 결과 어떤 언어적 특징이 어떤 유형의 포퓰리즘과 가장 밀접한지를 밝혀냈습니다.
✅ 분석의 의의
- 단순히 텍스트가 포퓰리즘인지 아닌지를 분류하는 수준을 넘어서, 정확히 어떤 말투와 문체가 어떤 유형의 포퓰리즘을 구성하는지를 수치적으로 확인할 수 있음
- 언어의 심리적 속성이 정치적 메시지에 어떻게 전략적으로 사용되는지 실증 분석 가능
- 이는 포퓰리즘 담론이 내용 중심이 아니라 형식 중심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짐
🧪 주요 발견: 포퓰리즘의 ‘언어적 DNA’
말투로 드러나는 네 가지 포퓰리즘 유형
회귀분석 결과, 포퓰리즘 네 유형 각각이 특유의 언어적 특성을 가지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말투는 정치적 메시지를 구성하는 전략적 도구로서, 대중과의 연결감을 형성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 좌파 포퓰리즘 (Left-wing Populism)
주요 특징: 정제된 비격식, 감정 절제, 구조 비판
informal | +2.82 | 친근한 언어, 평민적 어조 |
swear, netspeak | -2.7 이하 | 욕설, 인터넷용어 회피 |
nonflu, assent | -2.8 이하 | 말의 비유창성/우회 표현 회피 |
anger, anx | 음수 | 분노, 불안 표현 자제 |
좌파 포퓰리즘은 민중과 가까운 언어를 쓰지만, 품위와 정당성을 해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정제된 어휘와 문체를 선택합니다. 감정보다 구조적 개혁과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며, 이는 Judis(2016)의 구분처럼 감정 기반보다 이성 기반 서사에 가깝습니다.
🔵 우파 포퓰리즘 (Right-wing Populism)
주요 특징: 단순 문법, 강한 감정, 카리스마형 리더십
article, prep, auxverb | 음수 | 문장 구조 단순화 |
feel, power | 양수 | 감정 호소, 권위 강조 |
tentat, percept | 음수 | 불확실 표현 회피 |
우파 포퓰리즘은 복잡한 문장을 줄이고, 감정과 리더십을 강조하는 카리스마형 언어 전략을 사용합니다. Hawkins et al. (2018)의 이론처럼, 명확한 적대 구도와 도덕적 위기의식을 언어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 반엘리트 담론 (Anti-elitism)
주요 특징: 비격식 어조 + 공격성, 그러나 전략적 자제
informal | +3.37 | 대중성과 간결함 강조 |
swear, netspeak | -5.0 이하 | 저급 언어는 철저히 배제 |
assent, nonflu | 음수 | 예의·유창성보단 단호함 강조 |
반엘리트 담론은 엘리트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어조를 쓰지만, 그 표현 방식은 매우 전략적입니다.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는 포즈를 취하지만, 저속하거나 무질서한 표현은 철저히 피합니다. 이는 Wodak(2015)의 ‘전략적 대결 프레임’과 부합합니다.
🟢 친대중 담론 (People-centrism)
주요 특징: 질문 회피, 사회·경제 서사 강조
interrog | -0.25 | 질문이 아닌 단언 중심 |
posemo | -1.13 | 긍정감정보단 불만 강조 |
social, money | 양수 | 공동체성 + 경제적 피해 프레임 강조 |
친대중 담론은 “우리는 피해자다”는 공동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희망보다 상실, 배신감, 위기감을 자극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질문’은 사라지고 ‘사실처럼’ 말하는 방식이 주를 이룹니다. 이는 Norris & Inglehart (2019)의 ‘문화적 반동(cultural backlash)’ 개념과도 이어집니다.
🧩 요약: 전략적으로 조율된 포퓰리즘의 말투
- 포퓰리즘은 단순하고 확신에 찬 말투를 좋아합니다.
- 그러나 이 단순함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중과의 정서적 연결을 위해 철저히 조정되고 계산된 말투입니다. - 각 포퓰리즘 유형은 같은 전략을 서로 다르게 조율합니다.
감정을 강조하되 욕설은 피하고, 비격식을 쓰되 유창성을 유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