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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실험] Fredriksen (2025)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말, 정말 효과 있을까? (Political Behavior)

Dr. Julia 2025. 5. 25. 18:51

🗳️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말, 정말 효과 있을까?

🔍 연구 배경: 왜 이 논문이 중요한가?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한때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불리던 나라들조차, 최근 수년간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선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오르반, 터키의 에르도안,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인도의 모디, 브라질의 볼소나루,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까지—이들은 모두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집권 후에는 사법부를 약화시키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며, 야당을 탄압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을 침식해왔습니다 (Levitsky & Ziblatt, 2018; Albertus & Grossman, 2021).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반민주적 행위를 보였던 정치인들이 여전히 강력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침해한 정치인을 용인하거나 심지어 지지하는 현상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한 학자들의 큰 우려를 불러왔습니다.

기존 연구들은 시민들이 왜 반민주적 정치인을 지지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 정당 지지와 이념적 동조성이 핵심 요인으로 꼽힙니다. 사람들이 지지하는 정당 후보라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더라도 묵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Svolik, 2020; Graham & Svolik, 2020).
  • 또 어떤 유권자들은 **후보의 능력(competence)**을 중시하여, 비민주적인 언행을 보였더라도 “일 잘하니까 괜찮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Luo & Przeworski, 2023).
  • 일부 연구는 정서적 요인, 특히 **집단 정체성과 정당 감정(affective partisanship)**이 시민의 민주주의 수호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Bartels, 2020; Touchton et al., 2020).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정치학 연구는 **“왜 사람들이 반민주적 후보를 지지하는가”**에는 많은 설명을 제시해 왔지만, **“어떻게 하면 그런 지지를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Kristian Frederiksen의 이 논문은 바로 그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입니다. 단순하면서도 실질적인 아이디어, 즉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메시지를 시민에게 주면, 그들이 반민주적 정치인을 더 비판적으로 평가하게 될까?”**라는 질문을 실험을 통해 검증한 첫 번째 국제 비교 연구 중 하나입니다.


🧠 핵심 아이디어: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어떻게 될까?

이 연구의 중심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민에게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주면, 그들은 민주주의 규범을 어긴 정치인을 더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이 가설은 실제 정치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해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며 유권자들의 경각심을 높이려 했습니다 (Shalal & Sullivan, 2022). 비슷한 메시지는 브라질, 멕시코, 인도 등 다양한 나라에서도 **민주주의 옹호 세력(pro-democratic forces)**에 의해 반복되어 왔습니다 (Boadle & Stargardter, 2023; Kumar, 2023; Sithole-Matarise, 2023).

이러한 ‘위기 프레이밍’ 전략은 정치 커뮤니케이션에서 흔히 사용하는 ‘프라이밍(priming)’ 효과에 기반합니다. 프라이밍이란, 사람들에게 특정 정보를 먼저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판단 기준이나 평가 방식을 무의식적으로 바꾸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Shadish et al., 2002).

이 논문은 특히 **합리적 선택 이론(rational choice theory)**의 틀을 빌려 프라이밍 효과를 설명합니다. 유권자들은 후보를 선택할 때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예를 들어,

  • “이 후보는 나와 정치 성향이 비슷한가?”
  • “이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을까?”
  • “민주주의 원칙을 잘 지킬 사람인가?”

이처럼 다양한 고려 요소가 있을 때, 시민들은 상황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 부여합니다. Frederiksen은 바로 여기에 주목합니다. 민주주의가 안정된 상태라면 유권자들은 민주주의 규범보다 정책이나 능력을 더 중시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위험한 상태라고 인식되면 민주주의 규범 준수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민주주의 지지도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서모스탯 모델(thermostatic model)’**과도 연결됩니다. 즉,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충분하다고 느끼면 규범을 덜 중요하게 여기고, 민주주의가 부족하거나 위태롭다고 느끼면 그것을 회복하려는 방향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Claassen, 2020; Wlezien, 1995).

하지만 기존 연구들은 이런 ‘프라이밍 전략’이 실제로 효과적인지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실험은 미국이라는 특정 국가에 국한되어 있었고, 국제 비교는 드물었습니다 (Braley et al., 2023; Voelkel et al., 2023).

Frederiksen의 이 논문은 바로 그 공백을 메웁니다.
10개국에서 실험을 설계하여, 다양한 정치·제도적 맥락에서 ‘민주주의 취약성 프라이밍’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합니다.

 

🌍 연구 방법: 10개국에서 실시한 대규모 실험

이 연구는 단순한 한 나라의 사례가 아닙니다. 총 10개국에서 두 차례의 실험을 진행한, 국제 비교 설계를 갖춘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 위기 메시지(프라이밍)가 정치 체제, 정당 체계, 민주주의의 안정성, 시민의 경험 등 다양한 조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는 두 개의 독립된 실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실험 1: 5개국에서의 후보 선택 실험 (Conjoint Experiment)

실험 기간: 2020년 9월~10월
국가: 미국, 영국, 체코, 멕시코, 한국
응답자 수: 총 14,268명
실험 방식: conjoint 실험 — 참가자들은 가상의 총리 또는 대통령 후보 두 명을 비교하고, 누굴 더 지지할지를 선택

📌 핵심 특징:

  • 각 후보는 여러 속성(attribute)을 무작위로 부여받습니다:
    나이, 성별, 직업, 정당, 정책 입장, 정치적 능력, 그리고 중요한 변수인 민주주의 규범 준수 여부
  • 예: 어떤 후보는 “야당 언론을 억제하려 한다”고 소개되고, 다른 후보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표현됩니다.
  • 민주주의 규범을 어긴 후보를 얼마나 덜 선호하는지를 측정합니다.
  • 응답자는 각기 다른 후보 쌍을 총 10번 보고 평가하며, 총 20개의 응답 데이터를 남깁니다.

📌 프라이밍(Priming) 조건:

  • 실험 전, 참가자들에게 다음 중 하나의 메시지를 읽게 합니다.
    1.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견고하다” (robust condition)
    2.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위태롭다” (vulnerable condition)
  • 이 메시지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언급하지 않고, 일반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 상태에 대한 묘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국제 비교가 가능하도록 만든 설계입니다.

📌 조작 점검(Manipulation Check):

  • 실험 후, 참가자들이 해당 메시지를 제대로 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 사실 확인형(Factual): 어떤 메시지를 읽었는지 기억하는지
    • 인지 변화형(Subjective):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하다고 느끼는지 5점 척도로 측정

✅ 실험 2: 7개국에서의 비넷 실험 (Vignette Experiment)

실험 기간: 2021년 10월~11월
국가: 미국, 브라질, 인도, 이탈리아, 멕시코, 폴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응답자 수: 총 7,067명
실험 방식: 비넷 실험 — 가상의 시나리오를 읽은 뒤 질문에 응답

📌 핵심 특징:

  • 참가자들은 가상의 선거 시나리오를 읽습니다.
    “당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후보가 다음 선거에 출마하고 있으며, 최근 그는 언론을 통제하거나 선거구를 조작하는 등의 제안을 했습니다.”
  • 이 시나리오 전에 다음 중 하나의 메시지를 무작위로 받습니다:
    1. 민주주의가 취약하다 (vulnerable)
    2. 민주주의가 견고하다 (robust)
    3. 어떠한 메시지도 없음 (baseline)
  • 이후, 참가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 “이 후보의 제안에 동의하십니까?”
    • “이 후보에게 투표하겠습니까?”
    • “당신의 정당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습니까?”

📌 이 실험의 장점:

  • 단일 시나리오를 통해 메시지와 후보의 행동이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에, 프라이밍과 후보 평가의 직접적 관계를 간단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음
  • 실험 1과는 달리 baseline 조건이 있어서 비교 기준이 명확함
  • 메시지 효과를 더 강하게 유도하기 위해, 참가자 본인의 국가 상황에 맞춘 메시지를 사용함 (예: “최근 당신의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논의가 많습니다.”)

📊 실험 결과: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메시지는 별 효과 없다?

이제 핵심 질문입니다.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메시지를 주면, 시민들은 정말로 반민주적인 후보를 더 강하게 제재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반적으로 그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 실험 1 결과 요약 (미국, 영국, 체코, 멕시코, 한국)

  • 시민들은 전반적으로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후보를 싫어했습니다. 즉, 반민주적 행위는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가 있음
  • 하지만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메시지를 본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반민주적 후보를 의미 있게 더 제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
  •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난 국가는 체코 한 곳뿐이며, 그 효과조차도 매우 작음 (지지 점수 -0.05 수준, 전체 5점 척도 중)
  • 나머지 국가들(미국, 한국, 멕시코, 영국)에서는 프라이밍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음

📌 주목할 점:

  • 시민들은 이미 반민주적 행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메시지가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수 있음
  • “지지 정당 후보”이거나 “유능한 후보”인 경우에도, 민주주의 침해가 지지율을 깎는 효과는 여전히 존재함

🧪 실험 2 결과 요약 (미국, 브라질, 인도, 이탈리아, 멕시코, 폴란드, 남아공)

  • 실험 1보다 더 정교한 설계로, baseline 대비 비교까지 가능
  • 결과는 유사함. 즉, 민주주의 위기 메시지가 지지를 낮추는 데 미치는 영향은 미미
  •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폴란드에서만 제한적으로 효과가 있었으며, 그조차도 한두 문항에서만 유의미함
  • 특히 멕시코에서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받은 참가자들이 반민주적 제안을 더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함 (역효과 가능성)

📌 효과 크기:

  •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난 경우에도, 효과 크기(cohen’s d)는 작음 (0.150.22 표준편차 수준, 결과 척도 전체의 57.5%)

💬 해석 및 의의

  •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메시지는 많은 나라에서 이미 익숙한 경고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감정적으로 무뎌졌거나, 이미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추가적인 메시지에 크게 반응하지 않은 것입니다.
  • 또 하나의 가능성은, 현실의 정당과 정치인을 언급하지 않은 점입니다. 보다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에서 메시지를 주었을 경우, 더 강한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 한편으로는, 시민들이 민주주의 원칙에 대해 여전히 강한 지지를 갖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낙관적인 시사점도 있습니다.

📌 결론적으로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민주주의가 위험하다”는 메시지는,
반민주적 정치인을 제재하려는 시민의 행동을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  

🤔 그럼 왜 효과가 없었을까?

논문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을 제시합니다:

  1. 시민들은 이미 민주주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다.
    → 그래서 굳이 경고를 하지 않아도 반민주적 행동에 반감이 있다.
  2. 경고 메시지가 너무 일반적이다.
    → 구체적인 정치인을 지목하지 않고, 단순히 “민주주의가 취약하다”고 말하는 정도로는 큰 행동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
  3. 현실 속 정치인에 대한 감정이 너무 강하다.
    → 시민들이 가상의 후보보다 실제 정치인에게는 더 확고한 지지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실험 결과는 오히려 낙관적인 것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변화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 결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더 나은 전략이 필요하다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하는 방식은 시민들의 행동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메시지, 즉 “우리는 이런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 요약 정리

질문요약
연구 주제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메시지가 시민 행동에 영향을 줄까?
연구 방법 10개국에서 두 차례 대규모 실험
주요 결과 대부분의 경우, 경고 메시지는 시민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함
시사점 시민들은 원래 반민주적 행동을 싫어하며, 경고보다 다른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
 

📝 마무리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지금 민주주의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연구는 그 말이 실제 시민들의 행동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두려움을 자극하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이유에 대한 더 설득력 있는 설명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