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퓰리즘, ‘국민’ 그리고 ‘엘리트’는 누굴 말하는 걸까?
정당들은 포퓰리즘의 이름으로 어떤 집단을 국민이라 부르고, 어떤 집단을 엘리트로 지목할까?
유럽 정치를 이야기할 때, 포퓰리즘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자주 말하는 ‘국민’은 과연 누구를 의미할까요? 그리고 그들이 싸워야 한다고 외치는 ‘엘리트’는 정확히 누구일까요?
이번 글에서는 2025년 발간된 최신 논문, Meijers, Huber, Zaslove의 〈The Anatomy of Populist Ideology〉를 바탕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봅니다. 이 논문은 유럽 31개국 312개 정당을 비교하여, 각 정당이 ‘국민’과 ‘엘리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입니다.
🔎 연구 배경: 비어 있는 개념, 그러나 강력한 정치적 무기
포퓰리즘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구절은 아마 이 말일 거예요. "포퓰리즘은 선하고 순수한 '국민(the people)'과 타락하고 부패한 '엘리트(the elite)' 간의 도덕적 대결이다." 이 문장은 Cas Mudde(2004)의 유명한 정의로, 이후 포퓰리즘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정의는 단순해 보이지만, 여기에 바로 핵심적인 의문이 숨어 있어요.
"그럼, 그 ‘국민’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걸까?"
"그 ‘엘리트’는 어떤 사람들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연구자마다, 정당마다, 나라마다 달라요. 예를 들어, 어떤 포퓰리즘 정당은 이민자를 국민에서 배제하고, 또 다른 정당은 부자나 기업가들을 배제하죠. 이처럼 ‘국민’과 ‘엘리트’는 고정된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유연하게 정의되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은 ‘비어 있는 기표(empty signifier)’라는 개념을 차용합니다. 원래는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라클라우(Ernesto Laclau, 2005)의 개념인데요, 고정된 실체 없이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하는 개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치에서 ‘국민’은 바로 그런 기표입니다. 다양한 정치 세력이 자신들의 담론 속에서 이 개념을 ‘채워 넣는’ 것이죠.
Margaret Canovan(2005)은 “국민(the people)”이라는 말의 모호성이 오히려 정치적 유용성을 만든다고 봤습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 개념을 정의할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보수적 민족주의 정당부터 급진 좌파 정당까지 모두 ‘국민’을 내세우지만, 그들이 말하는 ‘국민’은 전혀 다르기도 하죠.
이와 비슷하게, ‘엘리트’도 매우 유연한 개념입니다. 대부분의 포퓰리즘 정당은 전통 정치 엘리트를 비난하지만, 어떤 정당은 여기에 언론인, CEO, 학자까지 포함시키고, 또 다른 정당은 다국적 기업이나 국제기구를 적대시합니다(Krämer & Klingler, 2020; Kenny, 2020).
이처럼 ‘국민’과 ‘엘리트’는 모두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무기이자, 유동적인 상징입니다. 따라서 이 논문은 단순히 “포퓰리스트는 엘리트를 싫어한다”는 수준을 넘어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국민이라고 보고, 누구를 엘리트라고 간주하는지”를 정량적으로, 비교적으로 분석하고자 한 것입니다.
🧩 이론적 틀: 포퓰리즘과 이념의 교차점
그렇다면 정당은 왜 어떤 특정 집단을 ‘국민’으로 포함하거나 배제하고, 또 어떤 집단을 ‘엘리트’로 지목할까요? 이 논문은 두 가지 핵심 요인이 그 이유라고 봅니다. 바로 **포퓰리즘 정도(populism level)**와 **정당의 이념적 성향(ideological profile)**입니다.
먼저, 포퓰리즘은 단순한 정치 전략이 아니라, 정치를 ‘국민 대 엘리트’라는 대결 구도로 보는 일련의 **이념적 세계관(ideational worldview)**입니다(Mudde & Kaltwasser, 2017; Hawkins et al., 2019). 이 접근법은 포퓰리즘을 단지 인기영합주의나 레토릭으로 취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정치적 인식틀로 간주합니다.
이 논문은 특히 포퓰리즘을 다섯 가지 요소로 나누어 정량화합니다:
- 반엘리트성(anti-elitism)
- 국민 중심주의(people-centrism)
- 국민의 단일성과 순수성(indivisibility)
- 국민 일반의지에 대한 강조(general will)
- 도덕적 이분법(Manichean worldview)
이런 요소들은 기존의 다양한 포퓰리즘 척도 연구들과도 연결됩니다(Akkerman et al., 2014; Castanho Silva et al., 2020). 이를 통해 정당의 포퓰리즘 점수를 연속적인 스펙트럼에서 측정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포퓰리즘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같은 수준의 포퓰리즘을 가진 정당도 ‘국민’이나 ‘엘리트’를 다르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논문은 이념적 성향이라는 두 번째 요인을 도입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하위 요소가 포함됩니다:
- 전반적 좌우 이념(left-right scale): 정당이 일반적으로 좌파인지 우파인지
- 경제적 좌우 이념(economic ideology): 복지, 조세, 시장에 대한 입장
- 문화적 배타성(nativism): 비토착민(이민자 등)에 대한 위협 인식 정도
이러한 세 요소는 유럽 정당 체계의 양대 축, 즉 경제 축과 문화 축을 반영합니다(Kriesi et al., 2008; De Wilde et al., 2019; Bornschier et al., 2021). 특히 nativism은 최근 극우 포퓰리즘 연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으며, 포퓰리즘과는 구별되는 독립적 설명 요인으로 간주됩니다(Bonikowski et al., 2019; Meijers & van der Velden, 2023).
흥미로운 점은, 포퓰리즘과 네이티비즘은 모두 ‘우리 vs. 그들’이라는 이분법 구조를 공유하지만, 구분 방식이 다르다는 겁니다. 포퓰리즘은 수직적 이분법(국민 대 엘리트)을 따르고, 네이티비즘은 수평적 이분법(토착민 대 비토착민)을 따릅니다(De Cleen et al., 2018; Bonikowski, 2017).
따라서 이 연구는 단순히 “포퓰리즘이 강할수록 배타적이다”라는 명제를 넘어서, 그 배타성의 방향이 경제적이냐, 문화적이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좌파 포퓰리즘은 경제적 배타성(예: 부자 배제), 우파 포퓰리즘은 문화적 배타성(예: 이민자 배제)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는 것이죠.
🧪 연구 방법: 유럽 31개국, 312개 정당을 아우르는 POPPA 전문가 조사
이 논문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유럽 전역을 포괄하는 매우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연구자들은 2023년에 새로운 POPPA(Populism and Political Parties Expert Survey) 조사를 시행하여, 총 31개국 312개 정당을 대상으로 정당의 포퓰리즘 수준과 이념적 성향, 그리고 '국민'과 '엘리트' 개념화 방식을 측정했습니다(Meijers & Zaslove, 2021; Zaslove et al., 2024a).
👨🏫 전문가 조사의 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이 조사는 각국의 정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문가 평가 조사(expert survey)**입니다. 총 850명의 전문가 중 324명이 응답을 완료했으며, 평균적으로 한 나라당 약 10명 내외의 전문가가 참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각 정당의 성향을 다양한 항목에 대해 0~10점 척도로 평가했으며, 모든 정당에 대해 정제된 평균 점수가 산출되었습니다.
이러한 전문가 조사는 일반적인 정당 강령 분석이나 의회 발언 분석과 달리,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습니다:
- 정당이 실제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포착할 수 있다.
-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하며, 포괄적 비교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 텍스트 데이터처럼 문맥에 따라 편차가 큰 자료와 달리, 정책적 ‘명성’과 전체적 이미지를 반영한다(Meijers & Wiesehomeier, 2023).
🧮 무엇을 어떻게 측정했는가?
이 조사는 특히 다음의 다섯 가지 핵심 항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 포퓰리즘 정도 측정
다섯 가지 요소로 구성된 포퓰리즘 점수를 측정했습니다 (Mudde, 2004; Hawkins et al., 2019):
- 반엘리트주의(anti-elitism)
- 국민 중심주의(people-centrism)
- 국민의 동질성(indivisibility)
- 일반의지의 강조(general will)
- 선과 악의 이분법(Manichean worldview)
이 점수들은 합산되어 정당별 포퓰리즘 점수로 계산되었으며, 보조적으로는 확인적 요인분석(CFA)을 통해 타당성이 검증되었습니다.
2. 정당의 이념적 성향
세 가지 축에서 정당의 이념을 평가했습니다:
- 전반적 좌우 스펙트럼 (0=좌파, 10=우파)
- 경제적 좌우 이념: 세금, 규제, 복지국가에 대한 입장
- 네이티비즘(nativism): 이민자나 외국 문화에 대한 위협 인식
이는 기존 유럽 정당체계 이론(Kriesi et al., 2008; De Wilde et al., 2019)에 기반한 이념의 경제축-문화축 구분에 대응됩니다.
3. ‘국민’ 개념화 측정
정당이 다음 두 집단을 ‘국민’으로 포함하는지를 평가함:
- 이민자 배경을 가진 시민들 (문화적 관점)
- 매우 부유한 시민들 (경제적 관점)
4. ‘엘리트’ 개념화 측정
정당이 다음 네 집단을 ‘엘리트’로 간주하는지를 측정함:
- 정치인 (정치 엘리트)
- 언론인 (미디어 엘리트)
- 대기업 CEO (경제 엘리트)
- 학자들 (사회문화 엘리트)
모든 평가는 0점(전혀 해당 없음)부터 10점(전적으로 해당)까지의 척도에서 이뤄졌으며, 중간값 5점은 ‘중립’을 의미합니다.
📊 분석 결과 요약: 국민과 엘리트, 그 경계는 어디인가?
이제 가장 흥미로운 결과 요약입니다. 연구자들은 여러 회귀 분석과 상호작용 효과(interaction effects)를 통해, 정당의 포퓰리즘 정도와 이념 성향이 ‘국민’과 ‘엘리트’에 대한 정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혀냈습니다.
👥 1. '국민'에 대한 정의: 누가 국민인가?
📌 문화적 관점 – 이민자 배경 시민 포함 여부
- 포퓰리즘 점수가 높을수록 이민자를 ‘국민’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 그러나 결정적인 변수는 네이티비즘입니다.
→ 네이티비즘 점수가 1점 증가할 때, 이민자를 국민으로 보는 인식은 0.8점 감소. - 포퓰리즘은 여전히 유의미한 변수지만, 단독 설명력은 제한적입니다.
📌 요약: 우파 포퓰리즘 정당은 문화적으로 폐쇄적이며, 이민자를 배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좌파 정당은 포용적인 편이지만, 좌파 포퓰리스트는 일반 좌파보다 더 배타적입니다.
📌 경제적 관점 – 부유한 시민 포함 여부
- 포퓰리즘 점수가 높을수록 부유층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 경제적 좌우 이념이 가장 강력한 설명 변수입니다.
→ 좌파일수록 부자들을 배제합니다.
📌 요약: 좌파 포퓰리즘 정당은 경제적으로 배타적입니다. ‘1%’나 ‘올리가르히’ 같은 레토릭으로 부유층을 국민에서 제외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 2. '엘리트'에 대한 정의: 누가 엘리트인가?
이번에는 각 정당이 ‘엘리트’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 가장 핵심 변수는 단연 포퓰리즘입니다.
- 포퓰리즘 점수가 높을수록 정치인, 언론인, CEO, 학자를 모두 엘리트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 특히 언론인에 대한 불신이 포퓰리스트 정당에서 두드러집니다.
🎓 정당의 이념 성향은 일부 설명력만 가짐
- 좌파 포퓰리스트는 주로 CEO를 엘리트로 간주합니다.
- 우파 포퓰리스트는 주로 학자를 엘리트로 간주하며, ‘지식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강합니다.
➡️ 이는 미국의 트럼프가 CNN과 학계에 대해 자주 공격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입니다(Kenny, 2020).
🔁 3. 포퓰리즘과 이념의 상호작용: 교차 효과 분석
연구자들은 포퓰리즘이 정당의 이념과 결합될 때 어떤 조합이 가장 배타적인 결과를 만드는지를 추가로 분석했습니다.
- 우파 포퓰리스트는 이민자에 대해 가장 강한 배타성을 가집니다.
- 좌파 포퓰리스트는 부자에 대해 가장 강한 배타성을 가집니다.
- 포퓰리즘은 어떤 이념 성향이든지 간에, 해당 집단의 배타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 최종 요약
이민자 배제 | 우파 포퓰리스트 (nativist) |
부자 배제 | 좌파 포퓰리스트 (economic left) |
언론인 불신 | 양쪽 포퓰리스트 모두 |
학자 배제 | 우파 포퓰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