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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Kindt (2025) 포퓰리스트 시민은 ‘시민참여형 공론장(DMP)’을 지지할까? 좌우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을까?

Dr. Julia 2025. 5. 20. 08:48

포퓰리스트 시민은 ‘시민참여형 공론장’을 지지할까? 좌우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을까?

요즘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는 정치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그런데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populist citizens)은 ‘시민 공론장(deliberative mini-publics)’ 같은 민주적 실험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물음입니다. 더 나아가 “좌파 포퓰리스트와 우파 포퓰리스트는 이런 공론장을 다르게 평가할까?”라는 질문도 생각해볼 수 있죠.

네덜란드 정치학자 Rosa Kindt는 이런 흥미로운 문제를 실제 설문조사 데이터를 통해 분석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Kindt의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포퓰리스트 시민의 정치 태도와 민주주의 실험에 대한 평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연구 배경: 왜 ‘공론장’과 포퓰리스트 시민의 관계를 살펴보는가?

포퓰리즘이 단순히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만 해석되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포퓰리즘을 좀 더 복합적이고 모순된 정치적 태도로 바라보는 연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포퓰리스트 시민들이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하기보다는 민주주의의 이상(principle)은 지지하면서도 현실에서의 민주주의 운영(practice)에는 강한 불만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Canovan, 1999; Rovira Kaltwasser & Van Hauwaert, 2020).

즉, 이들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국민 주권(popular sovereignty)’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재의 정치 제도가 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대표민주주의 시스템은 정치 엘리트가 국민의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무시한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대의제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시민 공론장(deliberative mini-publics, DMP)’입니다. DMP는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모여 공정하게 정보를 받고 숙의(deliberation)를 통해 사회적 쟁점에 대해 의견을 형성하는 제도입니다.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공공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엘리트 정치에 실망한 포퓰리스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안입니다 (Curato et al., 2021).

하지만 의문도 있습니다. DMP는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다원주의적 시스템인데, 포퓰리즘은 종종 ‘국민은 하나의 단일한 뜻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공론장의 철학과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는 포퓰리스트 시민들이 실제로 DMP에 호의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Heinisch & Wegscheider, 2020; Zaslove et al., 2021).

Rosa Kindt의 이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과연 포퓰리스트 시민들은 DMP를 진심으로 지지할까?" 그리고 "좌파 포퓰리스트와 우파 포퓰리스트 사이에 그 태도의 차이는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실제 설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증 분석을 시도한 것입니다.


💡 이론적 배경: 누가 왜 DMP를 지지하는가?

시민들이 왜 DMP 같은 숙의 민주주의 제도를 지지하는지는 정치학 연구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연구들은 시민들의 정치적 불만과 참여 욕구를 중심으로 두 가지 주요 설명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Goldberg et al., 2020; Werner, 2020).

① ‘은밀한 민주주의자(Stealth Democrat)’ 설명

이 설명은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엘리트의 이익만을 대변하고 국민을 무시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DMP 같은 대안적 제도를 지지한다는 가설입니다. 다시 말해, 기존 정치 제도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수단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Hibbing & Theiss-Morse, 2002; Mohrenberg et al., 2021). 이들은 정치참여 자체보다는 정치 엘리트를 견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DMP를 선호합니다.

② ‘포스트물질주의자(Post-materialist)’ 또는 ‘인지적 동원(cognitive mobilization)’ 설명

반면 이 설명은 시민들이 단순히 정치에 불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기대하기 때문에 DMP 같은 제도를 지지한다고 봅니다 (Inglehart, 1977; Dalton, 2004). 이들은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서, 깊이 있는 숙의와 시민 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시민들입니다. 따라서 공론장 같은 새로운 제도에 자연스럽게 끌립니다.

이 두 설명은 모두 DMP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방향성과 이유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못 믿어서’ DMP를 선호하고, 다른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더 나아질 수 있어야 하니까’ DMP를 지지하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최근 연구들은 정치 효능감(political efficacy), 정치 관심도 같은 개인의 특성들도 DMP 지지와 연관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Bedock & Pilet, 2023; Walsh & Elkink, 2021). 예를 들어, 정치에 더 관심이 많고, 자신이 정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DMP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계층—예컨대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이 낮거나, 국회와 내 생각이 전혀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역시 DMP에 더 큰 기대를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Pilet et al., 2024). 이들은 기존 제도에서 배제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공정하게 선정된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DMP가 더 공정한 의사결정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 포퓰리즘은 무엇이며, 왜 DMP를 지지할 수 있는가?

포퓰리즘(populism)은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는 익숙하지만, 막상 정의하려면 꽤 복잡한 개념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이념적 접근(ideational approach)’**을 따라 포퓰리즘을 설명합니다 (Mudde, 2004; Stanley, 2008). 간단히 말하면, 포퓰리즘은 다음의 세 가지 핵심 구성요소를 가진 얇은(‘thin-centered’) 이념입니다:

  1. 국민 중심주의(People-centrism)
    • ‘국민(the people)’은 도덕적으로 순수하고 하나의 의지를 가진 존재이며, 상식(common sense)을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믿음입니다.
  2. 반엘리트주의(Anti-elitism)
    • 정치인과 관료 등 ‘엘리트(the elite)’는 부패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국민의 뜻을 왜곡하거나 무시한다는 인식이 포함됩니다.
  3. 마니교적 세계관(Manichaean worldview)
    • 사회는 선(국민)과 악(엘리트)의 대립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는 흑백논리적 사고가 깔려 있습니다.

이러한 포퓰리즘은 정치인이나 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정치 태도 속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런 개인 차원의 포퓰리즘을 ‘포퓰리즘 태도(populist attitudes)’로 측정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Akkerman et al., 2014; Schulz et al., 2018).

포퓰리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입니다:

  • 정치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 국회의원이나 정당, 정부가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감정을 갖습니다.
  • 대표민주주의에 대한 회의: 선출된 정치인이 국민의 의사를 왜곡한다고 믿습니다.
  • 참여의 욕구: ‘국민의 뜻’을 직접 반영하는 방식의 의사결정, 예를 들어 국민투표나 시민공론장(DMP)에 관심을 갖습니다 (Zaslove & Meijers, 2024).

그렇다면 왜 포퓰리스트 시민들은 DMP에 호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표면적으로 보면 DMP는 포퓰리즘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DMP는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과 함께 논의하고 숙의하는 다원주의적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은 국민을 ‘하나의 통합된 의지’를 가진 집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다양한 의견을 전제로 한 숙의와는 맞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포퓰리스트 시민들이 DMP를 지지하는 데에는 두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1.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신: DMP는 정치인을 배제하고 시민이 중심이 되기에, 엘리트를 불신하는 포퓰리스트에게 대안적 제도로 보입니다.
  2. 국민 주권에 대한 이상주의적 희망: 포퓰리즘은 단순한 정치적 불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의지가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낙관적 믿음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DMP는 이런 믿음에 부합하는 제도입니다 (Spruyt et al., 2016).

Jacobs (2024)는 DMP가 시민들에게 진정한 발언권을 줄 수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포퓰리스트 시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디어 반영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즉, DMP는 포퓰리스트에게 정치적 회복의 기회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은 다르지 않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모든 포퓰리스트가 DMP를 똑같이 지지할까? 특히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은 ‘국민’을 정의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DMP에 대한 태도도 다를 수 있습니다.

먼저, **좌파 포퓰리즘(left-wing populism)**은 ‘국민’을 포용적으로 정의합니다. 노동자, 소외계층, 이민자,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 집단을 ‘국민’ 안에 포함시키려 합니다. 이들은 보통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정의를 핵심 이슈로 삼고, 연대와 평등을 중시합니다 (March, 2017; Ivaldi et al., 2017).

반면,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은 배타적인 정체성 정치를 중심에 둡니다. ‘진정한 국민’은 특정 민족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며, 이민자나 외국인은 배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민자, 무슬림, 난민 등을 ‘위협적인 타자(dangerous others)’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Mudde, 2007; Heinisch & Wegscheider, 2020).

그렇다면 DMP처럼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숙의하는 제도는 누가 더 호감 있게 볼까요?

  • 좌파 포퓰리스트는 다원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므로, DMP의 기본 원리에 더 공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우파 포퓰리스트는 자신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섞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DMP에서 ‘적으로 인식하는 이들’과 함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면, DMP에 대한 지지가 낮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기반해,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두 번째 가설을 세웁니다:

H2: 포퓰리즘이 DMP 지지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좌파 포퓰리스트 시민이 우파 포퓰리스트 시민보다 더 크다.


🧪 연구 방법: 네덜란드 국민 대상 설문조사

이 연구는 네덜란드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고품질 설문조사 데이터를 이용해 분석을 진행했습니다. 네덜란드는 포퓰리즘이 뿌리내린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이며, 좌파와 우파 포퓰리즘 정당이 모두 존재합니다. 또한 DMP가 지방 수준에서 활발히 실험된 경험도 있어, 연구 사례로서 이상적입니다 (Gerring, 2017).

🔹 설문 데이터

  • 사용 데이터: LISS 패널 (네덜란드 CBS 기반 무작위 패널)
  • 주요 설문: 2021년 7월에 실시된 “Deliberative Mini-Publics and Democratic Innovations” 설문
  • 표본 수: 총 996명

🔹 주요 변수

  1. 종속 변수: DMP 지지
    • DMP에 대한 설명을 보여준 뒤, “DMP는 시민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라는 문항에 대한 동의 수준 (1~5점 척도)
  2. 독립 변수: 포퓰리즘 태도
    • Akkerman et al. (2014)의 문항 5개를 사용해 요인분석으로 하나의 지수 구성 (예: “정치인은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한다”)
  3. 상호작용 변수: 좌우 자기 위치
    • “당신은 정치적으로 좌-우 스펙트럼에서 어디에 위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0=좌파 ~ 10=우파). 이를 세 그룹(좌, 중도, 우)으로 범주화하여 분석.
  4. 통제 변수들: 정치 효능감, 정치 관심, 민주주의 만족도, 연령, 성별, 교육 수준 등

🔹 분석 방법

  • 선형 회귀분석(OLS)으로 포퓰리즘 태도가 DMP 지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검증
  • 포퓰리즘과 좌우 성향 간 상호작용 항을 포함해 가설 2 검증
  • 추가적으로 반이민 태도, 평등 지향성, 권위주의 성향 등을 호스트 이념의 대체 지표로 사용해 **강건성 검증(robustness checks)**도 진행함

📊 주요 결과: 포퓰리스트는 DMP를 좋아한다. 좌우 구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1. 가설 1 지지됨: 포퓰리즘 태도가 강할수록 DMP에 대한 지지도도 높았습니다. 이는 기존 연구 결과(Heinisch & Wegscheider, 2020; Zaslove et al., 2021)와 일치합니다.
  2. 가설 2는 지지되지 않음: 놀랍게도, 좌파 포퓰리스트와 우파 포퓰리스트 사이에 DMP 지지 수준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즉, DMP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포퓰리즘 이념 그 자체에서 비롯되었으며, 좌우적 ‘주류 이념(host ideology)’과는 무관했습니다.
  3. 우파일수록 DMP 지지도가 다소 낮은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포퓰리즘 수준과는 별개의 경향입니다.

🔍 해석: 포퓰리스트는 진짜 '직접민주주의자'일까?

이 연구는 흥미로운 결론을 내립니다. 포퓰리스트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의 이상을 중시하는 **‘이상주의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DMP의 다원주의적 특성과 완전한 국민 통제라는 환상이 어긋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민이 더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DMP를 지지합니다.

👉 다시 말해, 포퓰리즘의 핵심 가치 중 ‘국민주권(popular sovereignty)’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통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마무리: DMP는 포퓰리스트 시민과 민주주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이 연구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응답자들은 실제 공론장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가상의 DMP’에 대한 태도를 답했기 때문에, 실전 상황에서의 반응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DMP와 같은 시민 참여 제도가 포퓰리스트 시민의 불만을 완화하고, 민주주의 이상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줍니다. 특히 좌우 이념을 넘어서 포퓰리즘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시민들이 DMP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은, 오늘날 정치 체제의 정당성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