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Chaplin (2025) 인도네시아에서의 포퓰리즘 이슬람

🕌 인도네시아에서의 포퓰리즘 이슬람: 급진이 아닌 '다수자 국민주의'의 이야기
📌 이슬람주의가 곧 급진주의일까요? 인도네시아의 현실은 좀 더 복잡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Chris Chaplin(LSE)의 최신 논문을 바탕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등장한 **'무슬림 다수자주의(Muslim majoritarianism)'**와 그것이 **포퓰리즘(political populism)**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 배경: 왜 이 연구가 중요한가요?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다수 국가이며, 동시에 세계 3위의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이런 나라에서 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매우 복잡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인도네시아 정치에는 **"다수자주의적 포퓰리즘(majoritarian populism)"**이 눈에 띄게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는 다수 종파(수니파 무슬림)가 소수 집단보다 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는 흐름을 말합니다.
Chaplin은 기존에 종종 **"급진 이슬람주의자"**로 낙인찍혀온 이들이 실제로는 국가를 전복하거나 테러를 도모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국가 내에서 소속감을 주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 주체라고 말합니다 (cf. Asad 2007; Mamdani 2002). 즉, 이들은 기존 민주주의 틀 안에서 자신들의 가치와 정체성을 주장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죠.
🧪 연구 방법: "급진주의자"가 아니라 "국가 안의 국민"
Chaplin은 인도네시아 동부 마카사르(Makassar) 지역에서 활동하는 Salafi 모더니스트 운동가들, 특히 이슬람 설교자인 ‘Agus’(가명)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ethnography)**를 수행합니다.
Agus는 사우디아라비아 마디나 대학 출신으로 Wahdah Islamiyah라는 조직에서 활동하며, 종교와 정치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의 설교를 들어보면 흔히 말하는 극단주의 테러 단체와는 결이 다릅니다. 그는 “서양식 발전은 도덕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은 이슬람적 가치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즉, 그는 **"종교적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개발 담론"**을 주장하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주의라고 말합니다 (Barker 2005 참조).
📊 주요 발견: '급진'이 아닌 '애국적 시민'
Chaplin이 내리는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 무슬림 다수자주의자들은 자신을 급진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도덕적 타락과 외세(서구/중국/기독교/공산주의)로부터 인도네시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적 책임을 느낍니다. - 국가는 이들을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로 규정하지만, 이들의 담론은 사실상 국가 담론과 매우 유사합니다.
예: 국가도 '좋은 이슬람 vs 나쁜 이슬람'이라는 이분법을 활용하며, "바른 무슬림"을 장려하고 "과격 무슬림"을 단속하는 방식으로 종교를 통제합니다 (Nuraniyah 2020). - 이들이 주도한 **2016~2019년 Aksi Bela Islam(이슬람 수호 시위)**는 단지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정체성과 공동체 소속감의 확인이자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cf. Seo 2019; Graeber 2013; Juris 2008).
📽️ 실제 사례: '슈퍼 평화' 시위와 영화 <212: The Power of Love>
Chaplin은 특히 **“super damai(슈퍼 평화)”**라는 개념에 주목합니다. 2016년 대규모 시위 당시, 참가자들은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행동했고, 이를 통해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자 했습니다.
이런 메시지는 대중문화에서도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 영화 <212: The Power of Love>에서는 평범한 무슬림 시민이 아버지와의 갈등을 극복하며 신앙을 되찾는 이야기를 통해 이슬람은 사랑이고, 평화이며, 인도네시아의 중심 가치라고 표현합니다.
⚖️ 포퓰리즘은 나쁜 것인가?
Chaplin의 결론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위협만은 아니다.
- 오히려, 포퓰리즘은 시민들이 정체성을 표현하고 국가의 정의에 대해 발언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Laclau 2005; Mazzarella 2019).
- 이슬람 다수자주의자들도 공포, 사랑, 종교, 정치적 상상력 등 다양한 감정을 동원해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방식이 기존 국가 권력과 유사하기 때문에 둘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Chaplin은 Derrida(1988, 2005)를 인용하며, 국가 권력이든 포퓰리즘이든 모두 “차이(difference)”를 만들어냄으로써 정당성을 구축한다고 봅니다.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기보다는,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서사를 통해 자신을 설명합니다.
📚 인용된 주요 문헌 요약
- Laclau (2005) – 포퓰리즘은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를 묻는 감정적 힘.
- Seo (2019) – 태국 레드셔츠 사례를 통해, 포퓰리스트 시민은 생각보다 훨씬 정치적임을 보여줌.
- Nuraniyah (2020) – 인도네시아의 국가가 ‘과격 이슬람’을 탄압하는 ‘전투적 다원주의(militant pluralism)’를 운영한다고 지적.
- Asad (2007), Mamdani (2002) – 서구 세계가 이슬람을 '좋은 무슬림'과 '나쁜 무슬림'으로 나누는 방식을 비판.
✍️ 마무리: 급진화된 민족주의? 아니, 보통 시민의 정치
이 연구는 "이슬람주의 = 급진주의"라는 서구적 프레임을 넘어서, 인도네시아라는 맥락에서 종교적 시민들이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Chaplin의 말처럼,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 안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가 국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시민들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를 무조건 '급진적'이라고 낙인찍기보다는, 그들의 삶의 조건, 역사, 감정, 윤리를 이해하는 것이 인류학적 연구의 핵심이라고 이 논문은 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