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van der Brug et al (2025) 왜 포퓰리즘과 부패의 관계를 따져봐야 할까?
포퓰리즘, 정말 부패를 줄이나요?
– 유럽 30개국 데이터를 통해 본 포퓰리즘과 부패의 진실
요즘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타파하겠다”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이런 말은 대개 '포퓰리즘'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레퍼토리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들이 부패를 줄이고 정의로운 정치를 실현할까요? 아니면, 오히려 새로운 방식으로 부패를 키우는 건 아닐까요?
이 질문에 대해 유럽 30개국, 27년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한 논문이 있습니다.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대학교의 Vincenzo Alfano와 Salvatore Capasso가 발표한 2025년 논문, 「From Rhetoric to Reality: Assessing the Effects of Populism on Corruption」입니다.
🔍 연구 배경: 왜 포퓰리즘과 부패의 관계를 따져봐야 할까?
포퓰리즘 정치인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기득권 엘리트들이 나라를 망쳤다. 우리는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로 바꿔야 한다.”
이처럼 부패 척결은 포퓰리즘 레토릭의 핵심입니다.
‘국민 대 엘리트’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엘리트’는 부패의 상징이고, ‘국민’은 도덕적 순수성의 대변인처럼 묘사됩니다. 따라서 포퓰리스트는 자신을 “국민의 뜻을 실현하는 청렴한 대변자”로 포장하며, 기존 정치세력을 부패한 적으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이들이 말하는 ‘반부패’ 구호는 실제로 부패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또 다른 형태의 부패를 불러오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단순한 이론적 흥미를 넘어, 현실 정치와 제도 설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하거나 의석을 늘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Mudde & Rovira Kaltwasser, 2017; Norris & Inglehart, 2019).
📚 기존 연구에서 드러난 혼란
포퓰리즘과 부패 간의 관계를 다룬 기존 연구들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
- 포퓰리스트 정당이 부패를 줄인다고 보는 연구에서는, 이들이 시민의 분노를 반영해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하고 관료제의 낡은 관행을 제거한다고 주장합니다 (Manow, 2018).
- 반대로, 포퓰리즘이 오히려 부패를 심화시킨다고 보는 연구들은, 포퓰리스트가 집권한 이후 법적 견제 장치를 약화시키고 사적 인맥에 의존해 행정을 운영한다고 지적합니다 (Pappas, 2019; Urbinati, 2019).
이처럼 서로 상반된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lfano와 Capasso는 그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부패의 ‘이중성’**에 있다고 봅니다.
- 일선 공무원의 뇌물 수수나 공공서비스 비리 같은 **소규모 부패 (petty corruption)**와,
- 고위층의 정경유착, 사적 이익을 위한 인사 및 제도 왜곡 같은 **대규모 부패 (grand corruption)**는
원인도 다르고, 감시 방식도 다르며, 정치적 유인도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Johnston, 2005).
즉, 포퓰리즘이 부패에 미치는 효과를 이야기할 때는 “어떤 부패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정치적 책임과 제도적 역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포퓰리즘이 **정치적 책임성(accountability)**과 제도적 견제(constraints) 사이에서 매우 모순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 한편으로는 시민의 불만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고 부패한 정치를 응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 동시에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법, 규제, 감시 기관을 무력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권력 남용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Levitsky & Ziblatt, 2018).
이러한 양면성을 체계적으로 검증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길게 잡고,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포퓰리스트의 득표 수준과 집권 여부를 구분해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lfano와 Capasso의 연구는 기존 문헌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합니다.
그들은 “포퓰리즘은 부패를 줄이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서,
**“포퓰리즘은 어떤 종류의 부패를 줄이고, 어떤 종류의 부패를 키우는가?”**라는 훨씬 정교한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 연구 질문과 방법: 어떤 부패가 줄고, 어떤 부패는 늘었나?
Alfano와 Capasso(2025)는 기존 논의에서 자주 간과되었던 한 가지 중요한 점에 주목합니다.
바로, **포퓰리즘이 부패 전반을 줄이는가?**라는 질문보다 더 정교하게,
**“포퓰리즘은 어떤 종류의 부패를 줄이고, 어떤 종류의 부패는 오히려 늘리는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부패를 단일한 개념으로 보지 않고, **부패의 ‘이질적 특성(heterogeneous effects)’**에 따라 세분화합니다.
🔍 두 가지 부패 유형
- 행정적 부패(administrative corruption)
→ 보통 일선 공무원이 시민에게 금전이나 특혜를 요구하는 방식입니다. 예: 인허가 과정에서의 뇌물 요구, 세금 감면 대가 요구 등
→ 흔히 '작은 부패(petty corruption)'로도 불립니다. - 정치적 부패(political corruption)
→ 고위 정치인이 권력을 남용해 친인척, 측근에게 특혜를 주거나, 제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행위입니다.
→ 예: 공공계약 몰아주기, 사법부 장악 시도, 언론 통제 등
🧭 분석 전략
이 연구는 단순한 사례 분석이 아닙니다.
저자들은 **2000~2019년 사이 33개 민주주의 국가의 데이터를 활용한 패널 분석(panel data analysis)**을 수행합니다.
이를 통해 포퓰리즘 정당의 영향력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추적합니다.
- 포퓰리즘의 정도는 The Global Party Survey의 전문가 평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측정합니다 (Rovira Kaltwasser et al., 2019).
- 부패 수준은 Varieties of Democracy (V-Dem) 지표 중에서 행정적 부패와 정치적 부패 각각을 측정한 세부 항목을 사용합니다 (Coppedge et al., 2021).
또한, 분석 설계에서 중요한 점은 포퓰리즘이 정부에 들어갔는가(out-of-government vs. in-government) 여부를 구분한 것입니다.
단순히 의회에서 포퓰리즘 정당이 세력을 얻은 것과, 실제로 행정부 권력을 쥔 것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 주요 결과: 포퓰리즘은 부패의 ‘형태’를 바꾼다
이제 가장 핵심적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포퓰리즘은 부패를 줄이는가, 늘리는가?
정답은 “둘 다 맞다”입니다. 단, **‘어떤 부패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전제가 붙습니다.
✅ 행정적 부패는 줄어든다
포퓰리즘 정당이 집권하면, 국민의 직접적 불만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부패, 즉 행정적 부패는 감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포퓰리스트가 선거에서 이긴 후에도 “우리는 국민의 편이다”라는 정당성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의 뇌물 요구나 민원 처리 지연 같은 문제는 시민의 일상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작은 부패’부터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This result is consistent with the idea that populist parties in government tend to deliver on their anti-elite promises, at least symbolically, by punishing visible bureaucratic wrongdoing.” (Alfano & Capasso, 2025)
❌ 정치적 부패는 오히려 증가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부패는 오히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포퓰리스트 정부는 감시기관 약화, 언론 통제, 사법부 개입 등 제도적 견제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권력을 집중시킵니다.
이는 ‘우리는 국민을 대표하므로 견제받지 않아도 된다’는 포퓰리즘의 논리적 귀결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존 엘리트를 몰아낸 자리에 **측근과 친위세력을 채우는 사적 통치(private governance)**가 강화되는 것도 정치적 부패 지표 상승의 원인입니다.
🔁 결과 요약
행정적 부패 | 감소 (✅) |
정치적 부패 | 증가 (❌) |
이처럼 포퓰리즘은 부패를 줄인다고도 할 수 있고, 부패를 악화시킨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핵심은 **"어떤 부패인가?"**를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단순히 부패지수를 평균화해서 비교하는 분석만으로는 이 복합적인 현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원인을 지적합니다.
- "우리가 법이다"는 태도
포퓰리스트는 기존 제도를 ‘기득권의 산물’로 규정하며, 자신들은 그 위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합니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행정을 운영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 감시기관 무력화
사법부, 언론, 시민단체 같은 ‘견제 시스템’을 비판하거나 해체함으로써 감시 기능이 약화되고, 부패의 위험은 커집니다. - 단기적 정치 생명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정당의 정통성이나 기반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임기 안에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자’는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 정치 초보자들의 난맥상
갑작스럽게 집권한 포퓰리스트 정당은 행정 경험이 부족하여, 제도적 책임성과 투명성을 무시한 채 사적 네트워크에 의존하게 됩니다.
📌 결론: “반부패의 외침이 결국 부패를 키울 수도 있다”
이 논문은 단순히 "포퓰리즘 = 부패"라는 도식에 빠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포퓰리즘의 양면성을 밝히고자 합니다.
-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며 부패를 척결하겠다는 포퓰리스트의 약속은,
정말 일선 부패를 줄이는 데 일정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권력에 오른 뒤, 감시를 무력화시키고 측근 위주의 인사를 단행하며
더 심각한 그랜드 부패를 키울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포퓰리즘의 등장과 확산을 단순히 ‘민심의 승리’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구체적인 정책과 제도적 운용 방식까지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