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정치학] Kollberg (2025) 주류 정당의 포퓰리즘 레토릭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PSRM)
주류 정당이 포퓰리즘을 써도 될까?
— 독일 유권자 실험이 알려주는 이야기
유럽 정치에서 요즘 가장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포퓰리즘입니다. 특히 극우 포퓰리즘 정당(예: 독일의 AfD, 프랑스의 르펜당 등)이 급성장하면서, 기존의 주류 정당들은 “이들과 경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때 자주 나오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우리도 살짝 포퓰리즘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포퓰리즘 따라하기’ 전략이 효과가 있을까요?
독일 훔볼트대학교의 정치학자 Markus Kollberg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대규모 설문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이 연구는 2025년 정치과학 분야의 주요 저널인 Political Science Research and Methods에 실렸습니다.
포퓰리즘, 대체 뭘 말하는 거지?
이 연구에서 말하는 포퓰리즘은 특정 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언어 스타일에 가깝습니다. 즉, 포퓰리즘은 단순히 “이민자 반대” 같은 정책 입장이 아니라,
- “국민의 뜻이 최우선이다!”
- “엘리트들은 국민을 배신했다.”
- “정치는 국민 vs 엘리트의 투쟁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 대 엘리트’의 대립 구도를 강조하는 담론입니다. Cas Mudde라는 유명한 정치학자가 말한 것처럼, 포퓰리즘은 **얇은 이념(thin ideology)**으로서, 좌든 우든 어떤 정책과도 결합될 수 있습니다.
기존 연구들이 말해준 것
사실 그동안의 연구는 대부분 주류 정당이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의 정책(특히 이민 관련)을 얼마나 받아들이는가에 집중해왔습니다 (예: Meguid, 2008; Abou-Chadi & Krause, 2020). 이걸 'positional accommodation'이라 부릅니다. 즉, 정책적으로 우클릭하는 거죠.
반면, Kollberg는 정책이 아니라 말의 스타일, 즉 ‘포퓰리즘적 수사법(rhetoric)’만 따라할 때 효과가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포퓰리즘적 언어를 사용하면 유권자들이 주류 정당을 더 긍정적으로 볼까요?
📚 기존 연구들이 말해준 것: 주류 정당은 어떻게 극우 포퓰리스트에 대응해왔나?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Radical Right Populist Parties, PRR)의 부상은 유럽 정치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들이 주로 주장하는 것은 반이민, 반세계화, 그리고 엘리트에 대한 불신입니다. 그동안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런 정당이 잘 나가는 이유와 그에 대한 주류 정당의 전략적 대응을 분석해왔습니다.
가장 널리 연구된 대응 전략은 바로 정책적 수용(positional accommodation)입니다. 이는 주류 정당이 자신의 정책 입장을 극우 포퓰리스트 쪽으로 이동(moving to the right)시키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어, 중도 우파 정당이 “불법 이민은 통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민에 더 엄격한 입장을 취하면서 극우 유권자를 흡수하려는 전략이죠.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학자들이 바로 Bonnie Meguid (2005, 2008), Tarik Abou-Chadi (2016), Krause et al. (2023)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포퓰리스트 정당의 성공은 주류 정당의 전략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컨대 Meguid는 주류 정당이 무시 전략을 쓰는지, 배제 전략을 쓰는지, 수용 전략을 쓰는지에 따라 포퓰리스트의 성장이 억제되기도 하고 촉진되기도 한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잡한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 중도 유권자들은 이런 극우적인 정책 변화에 실망해서 등을 돌릴 수 있습니다.
- 반면 극우 유권자들은 “그래도 원조는 AfD지”라고 생각해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더 나아가 극우 담론을 수용함으로써 급진적 담론을 제도 정치권에서 정당화해버리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Dahlstrom & Sundell, 2012; Vrakopoulos, 2022).
즉, 단순히 극우를 따라가는 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상황마다 다르며, 그 효과는 제도 구조(예: 덴마크식 블록 시스템)나 정당 간 협력 여부(예: 극우와의 연정 배제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Hjorth & Larsen, 2022; Van Spanje & De Graaf, 2018).
🟡 그런데, 이런 연구들은 대부분 ‘정책’ 중심입니다. “주류 정당이 무슨 말을 하느냐(=수사적 전략)”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말의 톤”이 점점 포퓰리즘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 영국 보수당의 브렉시트 캠페인 (“Take back control!”)
- 오스트리아 국민당의 전 총리 쿠르츠의 포퓰리즘적 발언
- 독일 기민당(CDU) 내부에서도 “국민의 뜻을 들어야 한다”는 수사가 등장
이런 사례들을 두고 Mudde(2004)는 이미 20년 전, “이제는 주류 정당도 포퓰리즘 언어를 차용하는 시대”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최근 연구들은 주류 정당도 포퓰리즘 수사를 전략적으로 사용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 Rooduijn et al., 2014; Hunger, 2020; Esguerra et al., 2023).
그런데 말만 바꾸는 게 정말 유권자들에게 효과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지금껏 제대로 실험된 적이 없습니다. Kollberg의 연구는 바로 이 ‘언어적 포퓰리즘 수용 전략(rhetorical accommodation)’의 효과를 실험적으로 검증했다는 점에서 독창적입니다.
🧠 이론적 아이디어: 왜 포퓰리즘 수사가 유권자에게 ‘먹힐 것’이라 생각했을까?
Kollberg의 이론적 출발점은 두 가지입니다.
1️⃣ 첫째, 기존의 공간 투표 이론(spatial theory of voting)
이는 Anthony Downs(1957)의 고전적인 정치경제 모델입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정책 선호에 가장 가까운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어떤 유권자가 “이민을 제한하자”는 정책을 선호한다면, 그에 가까운 정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죠.
이 관점에서 보면, 정당이 포퓰리즘 정당의 정책을 수용하는 건 전략적으로 유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이 전략은 중도층 유권자에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위험이 따릅니다.
2️⃣ 둘째, 인지적 휴리스틱(heuristics)과 프레이밍 효과
하지만 현실에서 유권자들이 항상 정책을 꼼꼼히 따져가며 정당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우, 유권자들은 ‘언어적 단서’에 의존합니다.
- Sniderman et al. (1993)나 Chong & Druckman (2007)은 정치 엘리트들이 제공하는 언어적 프레임이 유권자의 판단을 좌우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예컨대 “이건 국민을 위한 정책입니다”라고 말하면, 같은 정책이라도 더 긍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Entman (1993)은 프레임이란 “현실의 특정 측면을 강조해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방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포퓰리즘 수사(예: “정치는 국민의 뜻을 반영해야 한다”)는 유권자에게 정당의 정체성과 정책의 ‘신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단지 정책만이 아니라 ‘말의 방식’도 유권자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포퓰리즘 수사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일종의 이념적 프레임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합니다.
- 예: Castanho Silva et al. (2019), Wuttke et al. (2020)은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이 실제로 이런 수사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고 보았습니다.
🟨 따라서 Kollberg는 가설을 세웁니다: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유권자들은, 주류 정당이 포퓰리즘적 수사를 사용할 때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설은 실제 실험에서 어떻게 드러났을까요?
그 결론은 놀랍게도, “별 효과 없다”였습니다.
🧪 어떻게 실험했을까?
— 정치 실험은 이렇게 설계됩니다!
Markus Kollberg는 유권자들이 주류 정당의 포퓰리즘 전략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매우 정교한 설문 기반 실험(survey experiment)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은 2022년 11월, 독일 전국 유권자를 대표하는 YouGov 패널을 통해 실시되었고, 총 4,042명이 참여했습니다.
이 실험은 한마디로 말하면 가상의 정치 뉴스 상황을 보여주고, 참가자들이 그 정당에 얼마나 투표할 의향이 있는지를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뜯어볼게요.
1️⃣ Step 1: 참가자의 성향 파악하기
먼저, 참가자들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물어봅니다.
- 포퓰리즘 성향 측정:
Castanho Silva et al. (2019)이 개발한 표준화된 포퓰리즘 질문지를 사용해, 응답자가 얼마나 ‘정치 엘리트에 불신을 갖고 있고’, ‘국민의 뜻이 최우선이라고 믿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 정책 선호 파악:
응답자마다 무작위로 세 가지 이슈 중 하나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이민 정책 (Immigration)
-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Ukraine war)
- 인플레이션 대책 (Cost-of-living crisis)
이 세 이슈는 모두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 AfD가 목소리를 높이는 분야이며, 주류 정당과 차별화되는 입장을 가지고 있죠.
2️⃣ Step 2: 가상의 정치 뉴스 상황 보여주기 (vignette)
응답자들은 국회에서 벌어진 가상의 토론 장면을 읽게 됩니다.
이 텍스트는 두 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고, 참가자마다 일부 내용이 랜덤하게 조합되어 다르게 보이게 됩니다.
📄 첫 번째 단락 (고정됨):
- 극우 정당인 AfD가 주류 정당을 비판하며,
- 포퓰리즘 수사를 사용해 “국민을 위한 진짜 정책”을 주장합니다.
- 예: “엘리트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진짜 국민의 편이다.”
📄 두 번째 단락 (실험 조작 대상):
이 부분이 바로 실험의 핵심입니다.
주류 정당의 반응이 아래 4가지 조건 중 하나로 제시됩니다.
1. No Accommodation (기존 유지) | 기존 정책 |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표현 |
2. Positional Accommodation (정책 수용) | AfD와 유사한 정책 | 일반적이고 중립적인 표현 |
3. Rhetorical Accommodation (수사 수용) | 기존 정책 | 포퓰리즘 수사 사용 |
4. Full Accommodation (정책+수사 수용) | AfD와 유사한 정책 | 포퓰리즘 수사 사용 |
또한 이 때 제시되는 주류 정당도 무작위로 중도우파 CDU/CSU 또는 중도좌파 SPD로 설정됩니다. 즉, 총 실험 조합은 2(정당) × 3(이슈) × 4(전략)으로, 다양하게 섞여 제공됩니다.
🗣 예시: 포퓰리즘 수사 포함된 문장
“우리는 국민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독일 국민의 진짜 이익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현실 감각 없는 엘리트들에 맞서겠습니다. 정치란 국민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3️⃣ Step 3: 응답자 반응 측정
자, 이제 참가자는 이 가상의 토론을 다 읽은 뒤,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합니다.
- “이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요?”
- 0 (절대 안 한다) ~ 10 (꼭 하겠다) 점수로 평가
→ 이게 바로 주요 종속변수, 즉 실험의 결과 지표입니다.
- 0 (절대 안 한다) ~ 10 (꼭 하겠다) 점수로 평가
- 조작 확인 질문(Manipulation Checks)
- “이 정당은 AfD 쪽으로 정책을 옮긴 것 같나요?”
- “이 정당의 언어가 AfD와 비슷하다고 느꼈나요?”
이 질문들은 실험이 성공적으로 잘 작동했는지를 확인하는 용도입니다.
→ 예: 포퓰리즘 수사만 들어간 조건에서, 사람들이 정말로 “언어가 AfD 같다”고 느꼈는지를 체크.
📊 왜 이런 방식으로 했을까?
Kollberg는 실험적 방법론이 꼭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왜냐하면…
- 현실 정치는 언제 수사와 정책이 섞였는지 구분하기 어렵고,
- 언론 소비나 개인의 정치 관심도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는 편향도 있기 때문입니다 (Leeper & Slothuus, 2014).
따라서 연구자는 모든 변수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설문 실험을 선택했고, 수사와 정책을 각각 독립적으로 조작하여 유권자의 반응을 따로따로 측정했습니다.
🧾 추가 팁: 응답자들은 정말 포퓰리즘 수사를 인식했을까?
응답자들은 실험에서 제시된 포퓰리즘 수사를 명확하게 인식했습니다.
- “공격적”, “선동적”, “국민만 강조하는 느낌” 등의 반응이 많았다고 합니다.
→ 이는 실험 조작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게다가 실험 참가자들은 “말투가 포퓰리스트적이다”라는 점은 잘 구별했지만,
그 말투 때문에 정책 자체가 급진적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습니다.
→ 즉, 정책과 수사를 분리한 설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죠.
이 실험을 통해, Kollberg는 단순히 “정당이 포퓰리즘적 언어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정책 변화와 말의 변화 중, 유권자는 어느 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가?”
라는 깊은 이론적 질문을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 결과 요약
✅ **정책 입장 변화(positional accommodation)**는 유권자의 정책 성향에 따라 효과가 있습니다.
- 우파 유권자 = 호감 증가
- 중도/좌파 유권자 = 호감 감소
❌ 그러나 **포퓰리즘 수사(rhetorical accommodation)**는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유권자에게도, 기존 지지자에게도 큰 변화 없음
- “우리는 국민을 위한 정당이다!” 같은 수사만으로는 지지율에 영향이 없음
이 결과는 다양한 조건(이슈, 정당, 유권자 정치성향 등)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포퓰리즘적 수사를 인지했음에도 말이죠.
그럼 이 연구가 말해주는 건 뭘까?
- 포퓰리즘 언어 스타일만으로는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 예전에는 포퓰리즘 수사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자극한다고 알려졌지만, 정책 없이 말만 바꾸는 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 주류 정당이 극우 정당을 따라할 때, 정책 변화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언어 변화는 아니다.
→ 하지만 이 정책 변화도 중도 유권자를 잃을 위험이 있습니다. - 포퓰리즘 수사 자체는 ‘휴리스틱’이 되지 못한다.
→ 즉, 유권자는 포퓰리즘 언어보다 정책이 자신과 맞는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왜 중요한가?
정치권에서는 “포퓰리즘 정당이 잘 나가니 우리도 그런 말 좀 해보자”는 유혹이 큽니다. 특히 언론의 보도를 보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영국의 보수당들이 포퓰리즘적 언어를 점점 더 사용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Kollberg의 연구는 냉정한 경고를 줍니다.
“그 말투, 별 효과 없어요.”
정책이야말로 유권자의 선택을 이끄는 진짜 요소이며,
말만 바꾸는 전략은 오히려 공허한 신호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죠.
마무리하며: 다음 연구는?
이 연구는 한 가지 실험 결과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한 정당이 포퓰리즘 수사를 쓰면 바로 사람들이 표를 줄까?”**라는 질문이죠.
하지만 실제 정치는 훨씬 복잡합니다.
- 포퓰리즘 수사가 시간이 지나면 영향을 줄 수도 있고,
- 다른 정당들의 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라에 따라 포퓰리즘 수사의 인식도 다르기 때문에,
독일 외 국가들에서 비슷한 연구가 진행될 필요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