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정치학] Bermer and Burgisser (2025) 왜 복지국가 재조정은 이렇게 어려운가? (PSRM)
📘 긴축 시대의 복지국가 재조정: 국민은 어디에 돈을 쓰길 원하는가?
논문 제목
Public opinion on welfare state recalibration in times of austerity: evidence from survey experiments
저자
Björn Bremer (막스플랑크 사회과학연구소), Reto Bürgisser (취리히대학교)
🧭 연구 배경: 복지국가의 미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복지국가는 오랜 시간 동안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회적 안정과 평등을 보장하는 핵심 제도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는 ‘황금기’라 불릴 만큼 복지국가가 꾸준히 확대된 시기였습니다. 실업, 노령, 질병, 산업재해 등 전통적 사회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연금, 실업급여, 건강보험 등 **소비형 복지(social consumption)**를 중심으로 복지지출을 늘려왔습니다. 당시의 정치적 분위기와 경제성장률은 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의 공존)과 함께 복지국가 팽창은 한계에 도달합니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세수는 줄어들고, 복지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피터 피어슨(Pierson, 1996)이 말했듯, 이제 국가는 ‘복지국가를 줄이는 정치(the new politics of the welfare state)’라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복지 삭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재정 안에서 기존 복지를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등장한 위험에 대응해야 하는 더 복잡한 과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더해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포스트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의 도래는 복지국가가 직면한 구조적 도전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합니다. 전통적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점점 현실과 괴리되었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비정규직 증가, 청년실업, 교육 격차, 돌봄 문제 등 새로운 사회적 위험(new social risks)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학계와 정책현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개념이 바로 **복지국가 재조정(welfare state recalibration)**입니다. 이는 단순한 복지 축소가 아니라, 복지국가의 구조와 우선순위를 다시 짜는 과정입니다. 기존의 ‘사후 보상형 복지’(즉, 문제가 발생한 후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역량을 키워 사전에 위험을 예방하는 방식, 즉 사회투자(social investment) 전략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합니다.
🔁 소비형 복지와 투자형 복지의 차이
- 소비형 복지: 실업급여, 연금, 아동수당 등 전통적 사회보장
- 투자형 복지: 교육, 직업훈련, 보육 등 미래역량 강화 중심
이러한 전환은 단지 제도적 변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매우 큰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자원은 유한하고, 모든 복지영역을 동시에 확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금을 더 주면 교육을 못 늘릴 수도 있고, 보육을 강화하면 실업급여를 줄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복지정책은 이제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된 셈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정책 간의 트레이드오프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이때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 “국민은 과연 어떤 복지를 더 우선시하는가?”
📌 “국민은 자신이 받는 복지 외의 영역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존 연구들은 대부분 한 정책 영역만 단독으로 물어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복지 확대에 찬성합니까?”라고 묻는 식이죠. 문제는 이 방식으로는 정책 간 우선순위나 대체 가능성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든 복지에 찬성한다고 대답하지만, 실제로는 “연금을 줄여야 교육을 늘릴 수 있다”는 식의 조건이 붙으면 의견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듭니다. 단순히 복지정책에 대한 지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복지정책 간의 선택 상황을 제시하여, 대중이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측정합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유럽의 세 국가(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수행되어, 각기 다른 정치경제 맥락 속에서 어떻게 복지 우선순위가 형성되는지도 비교할 수 있게 설계되었습니다.
즉, 이 논문은 단순히 "사람들이 복지를 좋아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당신은 교육과 연금 중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자녀가 없는 당신은, 다른 가족을 위한 보육예산 감축에 동의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진짜 복지국가 재조정의 정치적 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핵심 질문: 왜 복지국가 재조정은 이렇게 어려운가?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복지국가 개혁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 보육, 일자리 훈련 등 미래지향적인 **사회투자형 복지(social investment)**에 찬성한다고 답합니다. 실제로 이전 연구들(예: Neimanns et al., 2018)은 “사회투자 정책은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매력적이고, 정치적 갈등이 덜한 ‘밸런스 이슈(valence issue)’다”라고까지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사회투자형 복지를 강화하자는 담론은 많지만, 정작 정책적으로는 큰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 정치권은 국민이 지지한다는 복지 정책조차 쉽게 추진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 논문은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합니다:
1️⃣ ‘찬성’과 ‘우선순위’는 다르다
가장 핵심적인 논점은, 사람들이 특정 복지정책에 “찬성한다”고 해서 그 정책을 ‘우선시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존의 여론조사는 대부분 “정부는 교육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와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교육이 연금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제 정책 결정은 상충되는 선택지(trade-off)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 예시: “교육에 더 투자하려면 연금을 줄여야 합니다. 여전히 찬성하십니까?”
이처럼 제약 조건이 붙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입장을 바꾸는 경향을 보입니다. 즉, 무제한적인 지지와 현실적인 우선순위는 다르며, 후자는 실제 정책 설계에서 훨씬 중요합니다. 이 논문은 바로 이러한 “우선순위”를 실험 설계를 통해 측정하려고 합니다.
2️⃣ 복지국가는 더 이상 플러스-섬 게임이 아니다
복지국가가 처음 확장되던 시기(1945–1970년대)에는 **플러스-섬 게임(positive-sum game)**이 가능했습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수가 늘어나고, 새로운 복지정책을 도입해도 기존 수혜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다릅니다.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지속적인 재정 압박과 인구 고령화로 인해 **‘재정 제약’**을 안고 있습니다. 새로운 복지정책을 도입하려면 기존 정책 중 일부를 줄여야만 합니다. 즉, 복지정책은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되었습니다.
✅ 교육에 더 투자하면 연금 지출을 줄여야 한다
✅ 보육시설을 확충하면 실업급여를 줄여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대중은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직면합니다. 이 논문은 바로 이런 현실적인 조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분석합니다.
3️⃣ 정책 수혜자 집단(policy constituencies)의 강력한 저항
세 번째 이유는, 각 복지정책의 수혜 집단이 매우 조직화되어 있고, 자신이 받는 혜택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은퇴자 집단은 전체 유권자 중에서도 비율이 높고 투표율도 매우 높습니다. 이들은 연금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위험이 있다면, 아무리 좋은 개혁안이라도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보육정책에 민감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실업급여나 직업훈련이 줄어드는 개혁에 반대합니다.
이처럼 각 복지정책은 고유한 이해관계자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 집단들은 자기가 받는 혜택은 줄어들지 않기를 강하게 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의 저항은 정치적 연합을 깨뜨리고, 개혁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만듭니다.
📌 모든 사람이 복지를 원하지만,
📌 정작 “다른 사람을 위한 복지”는 희생할 생각이 없다.
결국 이 논문은, 복지국가 재조정이 어려운 이유는 단지 정책 설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유권자의 ‘협소한 자기이익’과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구조 때문이라고 봅니다.
📌 정리하면
1. 입장과 우선순위는 다르다 | 단순한 찬성 응답은 실제 선택상황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 |
2. 제로섬 게임의 현실 | 재정 제약 때문에 한 정책을 늘리면 다른 하나는 줄여야 한다 |
3. 수혜자 집단의 저항 | 각 복지정책은 조직화된 지지층을 갖고 있고, 이들은 자신의 몫을 포기하지 않는다 |
이러한 세 가지 구조적 요인이 맞물려서, 사회투자형 복지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복지국가 재조정은 매우 어렵고, 갈등적이며, 정치적으로 위험한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논문은 그 현실을 실험 데이터를 통해 정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연구 방법: 두 개의 서베이 실험
이 논문이 기존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가장 큰 지점은 바로 실험 설계의 정교함과 현실성입니다. 연구자들은 단순한 여론조사가 아닌 정치적 선택 상황에서 대중이 어떤 우선순위를 갖는지를 실제처럼 측정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의 서베이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이 실험들은 유럽의 세 국가(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 시행되었으며, 각국에서 1,200명씩 총 3,600명의 응답자가 참여했습니다.
🔹 실험 1. 스플릿 샘플 실험 (Split-sample Experiment)
🎯 실험의 목적:
첫 번째 실험의 핵심 목적은, 사람들이 교육, 보육, 직업훈련 같은 **사회투자형 복지(social investment policies)**에 대해 얼마나 지지하는지, 그리고 그 지지가 다른 정책과의 트레이드오프가 수반될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여론조사 방식은 주로 "이 정책에 찬성하십니까?"라는 단일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예산 제약이나 정책 간 충돌이라는 현실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그러한 한계를 보완하고자, 정책 간 선택의 갈등 상황을 실험적으로 설계하여, 응답자가 실제 재정 제약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가늠합니다.
🧪 실험 설계:
연구자들은 세 개의 사회투자 정책을 중심으로 총 12개의 문항을 구성했습니다.
응답자들은 무작위로 4개 그룹 중 하나에 배정되었고, 각 그룹은 다음과 같은 조건에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통제 그룹(Control) | "정부는 [정책 A]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 ❌ 없음 |
처치 그룹 1 | "정부는 [정책 A]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다만 [정책 B]는 줄여야 한다." | ✅ 있음 |
처치 그룹 2 | 동일 구조 (단, 트레이드오프 대상 정책만 다름) | ✅ 있음 |
처치 그룹 3 | 동일 구조 (다른 트레이드오프 구성) | ✅ 있음 |
예를 들어, "교육 지출 확대"를 묻는 문항은 다음과 같이 4가지 버전으로 구성됩니다:
- 통제 조건
정부는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 트레이드오프 조건 1
정부는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 다만, 노인 연금 지출은 줄여야 한다. - 트레이드오프 조건 2
정부는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 다만, 직업훈련 예산은 줄여야 한다. - 트레이드오프 조건 3
정부는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 다만, 보육서비스 지출은 줄여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보육(Childcare)**과 직업훈련(ALMP) 항목에 대해서도 각각 동일한 구조의 문항을 구성하여, 총 12개의 문항이 4개 그룹에 나뉘어 제시됩니다.
📊 문항 응답 방식 및 데이터 처리
- 응답자는 각 문항에 대해 0에서 10점까지의 척도로 자신의 동의 수준을 표시했습니다.
- 0 = 전혀 동의하지 않음
- 10 = 전적으로 동의함
- 이 점수는 이후 분석 단계에서 **찬성 여부를 이진 변수(binary variable)**로 재코딩되었습니다.
- 6점 이상 → ‘찬성’
- 0~5점 → ‘중립/반대’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특정 사회투자 정책에 대한 지지가 정책 단독 제시일 때와, 트레이드오프 조건이 있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됩니다.
🧩 실험이 제공하는 분석 가능성
이 실험의 가장 큰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정책 간 상대적 선호를 측정할 수 있다
단순 지지 수준이 아니라, ‘이 정책을 위해 다른 정책을 희생할 수 있는가’라는 현실적 선택 조건에서 응답자의 진짜 우선순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정치적 갈등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정책 쌍을 밝혀낸다
예컨대, ‘교육 vs 연금’, ‘보육 vs 아동수당’ 같은 구성에서 어떤 항목이 더 강한 지지 기반을 갖는지를 비교할 수 있어, 실제 정책 설계에서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 응답자의 정책 수용 한계를 실험적으로 드러낸다
사람들이 아무리 사회투자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수혜를 받는 소비형 복지를 포기하라고 하면 지지가 급격히 약화된다는 사실을 이 실험은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 예시로 보는 구조
통제 질문 | “정부는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 이상적 조건에서의 기본 지지 측정 |
트레이드오프 질문 A | “정부는 교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다만 연금은 줄여야 한다.” | 세대 간 우선순위 충돌 측정 |
트레이드오프 질문 B | “정부는 보육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다만 실업급여는 줄여야 한다.” | 취약계층 간 자원 분배 우선순위 측정 |
트레이드오프 질문 C | “정부는 직업훈련에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다만 아동수당은 줄여야 한다.” | 비정규직과 가족 간 우선순위 갈등 측정 |
🔍 실험 결과가 갖는 함의
이 실험 결과는 다음과 같은 함의를 제공합니다:
- 대중의 정책 지지는 상황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다.
사회투자 정책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는 환상에 가깝다. 응답자들은 정책 간의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매우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 연금, 실업급여처럼 직접적인 소비형 복지에 대한 반감은 거의 없다.
특히 연금 감축을 조건으로 내건 문항에서는 지지율이 눈에 띄게 낮아진다. 이는 고령 유권자나 가까운 미래의 연금 수혜자들이 강하게 반응함을 보여준다. - 보편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사회투자 정책은 교육 정도에 한정된다.
교육은 연령과 계층을 초월해 비교적 넓은 지지 기반을 가진 반면, 직업훈련이나 보육은 수혜계층이 좁기 때문에 지지 기반이 더 약하고, 다른 복지정책을 감축하는 조건에서는 쉽게 지지가 이탈한다.
✅ 결론적으로
스플릿 샘플 실험은 응답자의 겉으로 드러나는 정책 ‘지지’가 정책 간 선택 상황에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연구자들은 표면적 여론과 실제 정책 우선순위 사이의 괴리를 발견하고, 복지국가 재조정이 왜 정치적으로 어려운지를 구조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 실험 2. 컨조인트 실험 (Conjoint Experiment)
🎯 실험의 핵심 목적
두 번째 실험인 컨조인트 실험의 핵심 목적은 단순합니다.
“국민은 복지국가 개혁안 전체를 봤을 때, 어떤 정책 항목에 더 큰 중요도를 두는가?”
실제 정책 결정은 개별 항목이 아니라 복합적인 정책 패키지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예산은 유한하고, 각 복지정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국민이 어떤 조합을 선호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측정하기 위해 저자들은 **컨조인트 설계(conjoint design)**를 활용했습니다. 이는 정치학과 사회과학에서 최근 매우 활발히 쓰이는 서베이 실험 기법으로, 응답자에게 여러 정책 속성을 한꺼번에 제시하고, 실제로 선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우선순위 판단 기준과 반응의 강도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 컨조인트 실험(Conjoint Experiment)이란?
컨조인트 실험은 원래 마케팅 분야에서 소비자의 상품 선호를 분석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입니다. 제품의 속성(attribute)들을 조합하여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응답자에게 그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함으로써 속성별로 어떤 요소가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정량적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과 정책연구에서는 이를 활용해 다음과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 복수의 정책이 결합된 상황에서 실제 선택 행동을 유도함으로써 단순 지지 응답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음
- 정책 간 우선순위, 트레이드오프 수용도, 속성의 중요도(AMCE) 등을 비교 가능
- 현실적인 제약 조건(예산, 정치적 타협 등)을 실험 설계에 반영할 수 있음
이 논문은 컨조인트 실험을 통해, 단일 정책에 대한 호감도가 아니라 여러 복지정책을 동시에 조정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우선시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 이 논문에서의 컨조인트 실험 설계
🎯 목표
- 참가자가 복수의 정책 항목이 포함된 개혁안을 보고 실제처럼 선택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정책 간 우선순위 구조와 수용 가능한 트레이드오프 경계를 파악
- 특히 긴축재정 상황(예산 총량 고정)에서 응답자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을 희생하려 하는지를 측정
🔧 실험 구성의 핵심 요소
1. 두 개의 ‘복지개혁 패키지’ 제시
- 응답자는 매 과제마다 정책 변경안을 두 개(A안, B안) 제시받습니다.
- 각 개혁안에는 6개의 복지정책 항목이 포함되어 있으며, 각각의 항목은 지출수준 세 단계(증가 / 유지 / 감소) 중 하나로 설정됩니다.
- 응답자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choice)**하고, 각 개혁안에 대해 **지지도를 평가(rating)**합니다.
2. 포함된 복지정책 항목 (총 6개)
소비형 복지 | 연금(Pensions) | 고령자 소득 보전 |
실업급여(Passive Labor Market Policies, PLMP) | 실직자에 대한 기본 소득 지원 | |
아동수당(Child Benefits) | 자녀 양육 가정에 대한 현금 지급 | |
투자형 복지 | 교육(Education) | 초·중등 및 고등 교육에 대한 정부 지출 |
직업훈련(Active Labor Market Policies, ALMP) | 실업자의 재취업을 위한 직업 교육 및 훈련 | |
보육서비스(Childcare Services) | 공공 보육시설 및 서비스 지원 |
3. 각 정책 항목의 수준(Levels)
각 항목은 다음 세 가지 중 하나의 수준으로 무작위 설정됩니다:
- 지출 증가 (Increase Spending)
- 지출 유지 (No Change)
- 지출 감소 (Decrease Spending)
이 조합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총 3⁶ = 729가지 개혁안 조합이 가능합니다.
4. 예산 균형 조건 (Balanced-budget constraint)
- 현실의 복지 개혁과 마찬가지로, 모든 지출 항목을 증가시킬 수는 없습니다.
- 연구자들은 이를 반영해, ‘공짜 점심 없음(no free lunch)’ 설계를 도입했습니다.
- 각 개혁안은 반드시 ‘지출 증가’와 ‘지출 감소’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됩니다.
예: 교육 지출을 늘리면 아동수당이나 연금을 줄이는 방식
이로써 응답자는 “나는 모든 복지를 다 늘리고 싶다”는 이상적 응답이 아니라, 무언가는 줄여야만 다른 것을 늘릴 수 있는 현실적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 응답자가 수행한 과제
각 응답자는 총 5개의 선택 과제를 수행하며, 매 과제마다 아래 두 질문에 답했습니다:
- 어느 개혁안을 더 지지하십니까?
→ A안 vs B안 (선택 질문, binary) - 각 개혁안을 얼마나 지지하십니까?
→ 각 안에 대해 1~5점 척도로 지지 정도 표시 (평점 질문, rating)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이후 선택 확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사용됩니다.
👀 구체적인 예시 ①
아래는 실험에 실제로 나올 수 있는 패키지 비교 예시입니다.
연금 | 지출 유지 | 지출 감소 🔻 |
교육 | 지출 증가 🔺 | 지출 유지 |
실업급여 | 지출 감소 🔻 | 지출 증가 🔺 |
보육서비스 | 지출 증가 🔺 | 지출 감소 🔻 |
아동수당 | 지출 유지 | 지출 유지 |
직업훈련 | 지출 감소 🔻 | 지출 증가 🔺 |
질문:
“당신은 A안과 B안 중 어느 복지개혁안을 더 지지하십니까?”
🧠 응답자의 인지 구조
응답자는 위와 같은 복합적 정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교육에 대한 지출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A안이 매력적이다.
- 하지만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이 감소한다는 점은 우려된다.
- B안은 직업훈련과 실업급여를 늘리지만, 연금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럽다.
- 또한 보육서비스도 B안에서 줄어든다.
→ 연금 감축이 우려되어 B안이 마음에 안 든다. 교육이 중요하므로 A안 선택.
이런 사고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 비교함으로써 어떤 정책이 평균적으로 더 우선시되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 구체적인 예시 ②
(응답자 유형별 반응 상상)
예: 65세 은퇴자 A씨의 선택
연금 | 지출 감소 🔻 | 지출 유지 |
교육 | 지출 증가 🔺 | 지출 증가 🔺 |
실업급여 | 지출 유지 | 지출 증가 🔺 |
보육서비스 | 지출 유지 | 지출 감소 🔻 |
아동수당 | 지출 유지 | 지출 유지 |
직업훈련 | 지출 유지 | 지출 감소 🔻 |
→ A씨는 연금 삭감이 있는 A안을 꺼릴 가능성이 큽니다.
→ 교육이나 실업급여 확대보다 자신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연금 유지가 더 중요하므로 B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 30대 직장인 B씨, 자녀 1명 보육 중
연금 | 지출 유지 | 지출 유지 |
교육 | 지출 유지 | 지출 증가 🔺 |
실업급여 | 지출 유지 | 지출 감소 🔻 |
보육서비스 | 지출 증가 🔺 | 지출 감소 🔻 |
아동수당 | 지출 증가 🔺 | 지출 유지 |
직업훈련 | 지출 유지 | 지출 유지 |
→ B씨는 자녀를 키우는 중이므로 보육서비스와 아동수당이 모두 증가하는 A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 교육 지출도 중요하지만, 본인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오는 보육 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 요약: 이 실험 설계의 핵심은?
6개 복지 항목 | 연금, 교육, 실업급여, 직업훈련, 보육, 아동수당 |
각 항목 수준 | 지출 증가 / 유지 / 감소 |
선택 조건 | 두 패키지 중 1개 선택 + 각 패키지에 대한 지지도 평가 |
제약 조건 | 지출 증가 ↔ 지출 감소 조합 → 예산 균형 강제 |
분석 방법 | AMCE + 조건부 평균 (정책 우선순위 + 집단별 반응 측정) |
🎯 왜 이 방식이 중요한가?
이 실험 설계는 응답자에게 복지정책에 대한 단순한 '호감'을 묻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다양한 정책이 동시에 조정되는 복합적 상황에서,
“무엇은 지키고, 무엇은 포기할 수 있는가?”
“누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
를 측정하기 위한 정교한 실험 장치입니다.
이렇게 얻어진 데이터는 정치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 어떤 정책을 줄이는 순간 지지가 급격히 이탈하는가?
- 사회투자형 복지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 실행력이 있는 항목은 무엇인가?
- 특정 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떤 집단에게 어떤 보상을 설계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이 논문의 컨조인트 실험은 단지 복지 여론을 측정한 것이 아니라, 복지정치의 구조적 균형점을 실험을 통해 모델링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어떤 분석을 했는가?
🔹 AMCE (Average Marginal Component Effect)
- 각 복지 항목의 수준 변화(예: ‘교육 증가’ → ‘지지율 +3.8%’)가 전체 개혁안 선택 확률에 미치는 평균적 영향력을 계산합니다.
- 단일 정책 항목이 아니라 패키지 전체 평가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Marginal Means (조건부 평균 지지율)
- 특정 사회집단(예: 연금 수혜자, 자녀 있는 부모, 실업자 등)이 특정 정책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측정합니다.
- 이를 통해 이해관계 집단별 우선순위 구조를 도출합니다.
📌 예시로 보는 응답자의 선택 상황
연금 | 유지 | 감소 |
교육 | 증가 | 유지 |
실업급여 | 감소 | 증가 |
보육서비스 | 증가 | 감소 |
아동수당 | 유지 | 유지 |
직업훈련 | 감소 | 증가 |
- A안은 교육과 보육을 늘리지만 연금은 그대로 두고 실업·직업훈련은 줄임
- B안은 실업급여와 직업훈련을 강화하지만 연금은 줄이고, 보육은 줄임
→ 이런 식으로 응답자는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조합을 선택하게 됩니다.
📊 주요 결과 요약
논문에서는 두 가지 서베이 실험—① 스플릿 샘플 실험, ② 컨조인트 실험—을 통해 국민들이 복지국가의 다양한 정책들 사이에서 어떤 **우선순위(priority)**를 두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아래는 두 실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핵심적인 발견입니다.
1️⃣ 사회투자 정책에 대한 ‘표면적 지지’와 ‘실질적 우선순위’는 다르다
- 스플릿 샘플 실험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교육·보육·직업훈련 같은 사회투자형 복지 정책은 단독으로 물어보면 지지율이 높습니다(예: 교육 지출에 찬성하는 비율 약 88%).
- 그러나 같은 문장에 트레이드오프(예: “연금을 줄여야 한다”) 조건이 추가되면 지지율이 10~30%p 하락합니다.
- 교육 지출 확대가 연금 삭감을 수반할 경우, 지지율은 55% 수준으로 떨어짐.
- 직업훈련 지출을 늘리면서 보육을 줄이겠다는 조건은 다수의 반대를 야기.
2️⃣ 컨조인트 실험은 복지정책 간 다차원적 선호구조를 드러냈다
- 교육과 연금은 가장 확고한 우선순위 항목으로 확인됨.
- 연금 지출 증가 시: 전체 정책 패키지에 대한 지지율이 +5%p 상승
- 교육 지출 증가 시: +4%p 상승
- 반대로 연금 지출 감축은 -7%p로 지지율 급락
- 직업훈련과 실업급여는 낮은 우선순위
- 실업급여 지출을 늘리는 경우 오히려 전체 패키지 지지가 감소
- 보육 및 아동수당은 중간 정도의 영향력
- 아동수당 지출 증가 → 지지율 하락
- 보육 서비스 지출 증감 → 전체 지지에는 큰 영향 없음 (대중의 관심이 적음)
3️⃣ 정책 수혜자 집단(policy constituencies)은 자신이 혜택을 받는 복지에만 민감하다
- 은퇴자는 연금에 대해 가장 강한 지지와 방어적 태도를 보임
- 연금 지출 감소가 포함된 패키지는 다른 모든 집단보다 더 강하게 반대
- 부모는 보육과 아동수당에 우호적이나, 그 외 정책에 대해서는 별반 다르지 않음
- 불안정 고용자(outsiders)는 실업급여 감소에 민감하지만, 직업훈련 증가에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음
❗결론적으로, 복지정책은 전체적으로 지지받는 것이 아니라, ‘각 집단이 자기 몫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정치적 자원 분배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실험적으로 입증합니다.
🔍 이론적 기여
이 논문은 복지국가 정책, 여론 연구, 그리고 정치적 경제학 분야에 다음과 같은 이론적 기여를 합니다.
1️⃣ ‘정책 지지’와 ‘정책 우선순위’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입증
기존 연구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여론을 측정해 왔습니다:
“이 정책(예: 교육 지출 확대)에 찬성하십니까?”
이러한 접근은 **정책에 대한 '태도(attitude)'**를 측정할 수는 있지만, 실제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우선순위(priority)'**를 포착하지 못합니다.
이 논문은 현실적인 트레이드오프 상황을 구성하여, 응답자가 두 정책 중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하는지를 측정함으로써, 이 둘이 다르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줍니다.
✅ 지지 = “좋다”
✅ 우선순위 = “다른 걸 포기하면서까지 이걸 택할 것인가?”
이러한 구분은 향후 공공여론 조사 설계와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습니다.
2️⃣ 복지국가 개혁의 갈등 구조는 계급보다 ‘정책 수혜자 집단’ 기반으로 나타난다
기존 복지국가 정치경제 연구는 갈등 구도를 소득, 계급, 이념에 따라 분석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실험 결과를 통해 보다 섬세한 갈등 구도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혜택을 받는 복지를 적극 방어하며, 다른 복지 항목의 감축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즉, 현대 복지국가는 더 이상 ‘중산층 vs 저소득층’ 같은 수평적 계층 갈등만이 아니라,
- 은퇴자 vs 부모,
- 노동시장 내부자 vs 외부자,
- 아동 보호자 vs 아동 없는 성인 등
보다 정책 수혜자 단위의 수직적 분할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 구성체적 정치(policy constituency politics)’는 앞으로 복지개혁 연구의 분석 단위를 재편성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3️⃣ 다차원적 복지국가 개혁은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점을 구조적으로 설명
정책적으로는 ‘사회투자형 복지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고 널리 주장됩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 교육, 보육, 직업훈련 같은 미래지향적 복지정책은
- 고정된 지지 기반이 없고
- 대중은 트레이드오프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반응하며
- 기존 수혜자 집단은 강력한 저항 세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복지국가 재조정은 구조적으로 어려운 개혁 과제라는 사실을 실험 기반으로 입증합니다.
4️⃣ 방법론적 기여: 복지 여론 연구의 측정 방식을 혁신
이 논문은 전통적 여론조사의 한계를 지적하고, 트레이드오프 기반 설계와 컨조인트 설계를 결합한 새로운 분석 방식을 제안합니다.
- 응답자가 “무엇을 좋아하느냐”뿐 아니라
- “무엇을 포기하면서까지 무엇을 선택하느냐”를 묻는
현실 대응형 여론조사 모델로 확장한 셈입니다.
이러한 방법론은 복지정책뿐 아니라, 기후변화 정책, 이민정책, 국방예산 등 정책 간 우선순위가 갈리는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으며, 복합정책 분석의 강력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 종합하면
“사회투자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다” | → 그렇지만 실제 우선순위에서는 밀릴 수 있다 |
“복지 지지는 넓고 포괄적이다” | → 각 정책은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방어되고 분절된다 |
“복지개혁은 단지 설득의 문제다” | → 사실은 정책 수혜자 간 정치적 충돌이 내재되어 있다 |
이러한 분석은 학문적으로도, 정책 설계적으로도 매우 깊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복지국가 개혁을 진지하게 추진하려는 정치세력이라면, 단순한 ‘지지율’이 아니라 정책 간 선택의 구조와 지지기반의 분절성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